질문 28: 원불교를 전라도 종교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물론 원불교 교조인 대종사가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이고 중앙총부가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기 때문에 그런 억측을 하는 분들이 계신 것도 사실인데 교리를 살펴본다면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일원상은 바로 그 자체가 차별을 초월한 자리이며 원만구족한 자리인 것입니다.

1대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전라도 분이지만 2대 종법사이신 정산종사는 경상북도 성주분이십니다. 1918년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 정산종사가 정읍 화해리 김해운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 대종사가 이곳에 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숙겁에 맺은 약속이 이루어짐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교당수의 예에서 보면 대종사님의 출신도인 전남과 광주에 2008년 현재 총 64개의 교당이 있는 반면에 부산 경남 지역에는 96개의 교당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전라도 종교라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세속에서도 지금은 지역 갈등이 굉장히 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러한 지역갈등이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인 것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지방 갈등 구조를 삼국시대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고 고려 시대의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에서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는 전두환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전 전대통령은 완산 전씨이고 그 할아버지가 전라도에서 사셨기 때문에 전라도 사람이며, 김대중 대통령도 김해 김씨이기 때문에 영남사람이 되십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광주 노씨이기 때문에 전라도출신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회창 총재는 전주 이씨,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전주 김씨이기 때문에 전주 사람이라는 논리 앞에 설 땅을 잃고 맙니다. 그 누구도 완벽한 전라도 사람도 또한 경상도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방 갈등은 1963년의 대선까지는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1963년 실시된 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윤보선 후보에 비해서 16여만 표차로 신승을 했는데 전라도에서 29만 표차의 몰표를 몰아 준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갈등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여촌야도라고 해서 촌사람들은 고무신이나 막걸리를 얻어먹고 여당을 찍었고 도시 사람들은 야당을 선호한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라남도에서 박정희 후보는 52.5%를 얻었는데 이는 박정희 후보의 고향인 경북의 50.6%나 부산의 45.6%보다 높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3선에 출마하면서 실시된 1971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맞선 7대 선거에서 코너에 몰린 공화당이 선거전략으로 지방색을 이용한 것이 지방갈등의 효시가 된 것으로 공식 보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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