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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6일간의 소록도 의료봉사<&24309>. 아마도 나의 삶에,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계기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소록도 의료봉사를 권유받았을 때, 『소록도? 나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곳 아니예요?』 하고 물으면서도 두려움 무서움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날 반겼다.

소록도를 향해 가던 첫날, 낯설은 한의대 언니, 오빠들 그리고 낯선 지방의 바다에 우뚝 솟은 큰 섬을 보면서 「과연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짧은 의학지식으로는 이들을 도울 수 없을 텐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부담이 더 컸다. 이렇게 첫날은 불안한 마음과 버스로 인한 피로감에 지쳐 보냈다.

둘째날, 새롭게 마음을 다짐하고 진료소를 향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없는 할머니, 다리에 의족을 하신 할아버지,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 콧대가 없이 뻥하니 뚫린 콧구멍만 있는 할머니, 그리고 거동이 불편해서 당신의 몸을 씻을 수 없어 심하게 냄새가 나는 이들… 낯선 이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원생분들과 접하면서, 「아! 이분들은 여느 다른 평범인 보다는 깨끗하고 순수한 면을 지닌 분들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들과 대화도 하고 서로 웃음을 주고 받고, 이제는 따스하게 원생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얼굴의 분비물도 닦아드리는 신체접촉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날, 처음에 불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이곳에서 정말 할일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짧은 의학지식으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진심으로 이들을 한 인간으로서 대하고 말벗이 되어주는 그런 각별하고 애정어린 관심이 필요했다. 보통 사람들과 단절된 이 소록도에서 나 혼자만이 살아가야 한다는 고독감, 외로움을 견딜 수 있도록, 따스한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큰 기쁨으로 다가선다는 걸 점점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넷째날, 다섯째날, 이제는 모든 일에 익숙해져서, 마음의 여유로움과 함께 원생분들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살며시 고인 눈물이 여러번 앞을 가렸다. 난 이들이 너무나 가여웠다. 나의 마음에 쌓여만 갔던 동정심의 파도가 점점 더욱 거세게 나를 짓눌렀다. 이들을 한 인간으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눈물이 그게 아니란걸 말해 주었다. 난 어느새 무한한 동정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 스스로를 무척이나 부끄러워 한다.

희망이 없고 그래서 미래가 없는 원생분들… 다만 현실의 삶에 만족하고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다보면 현재가 미래가 될 것이고, 그 미래가 어느새 현실로 다가와 되풀이된 삶을 반복하고 있겠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아직은 젊고 건강하고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 비록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분들을 잠시나마 너무나 큰 동정심으로 다가섰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5박6일간의 길지만 결코 길지 않은 의료봉사 활동<&24309> 나처럼 작은 존재가 원생들께 기쁨을 주고 생활의 활기를 불어 넣어 준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가치있게 만들었다. 어느새 커져있는 나를 보면서, 아마도 처음으로 인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나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원광보건전문대 간호과 1년. 원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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