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일등貧者一燈 갈진포시竭盡布施의 삶

<사진>

북광주 교당 창립 유공인인 화타원 김춘화옥 대호법이 지난달 23일 중앙수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열반, 24일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교회전체장으로 발인식을 거행했다. 장지는 영모묘원.

左山종법사는 발인식 법문에서 『우리 교단에 대호법이 많이 계시지만 화타원님 같이 인생역정을 굽이굽이 다 겪으시면서 알뜰히 모은 정재를 빈자일등의 신성으로 희사한 분은 드물다』면서 『갈진보시의 삶을 통한 그 공덕은 영원할 것』이라고 설법했다.

장의위원장인 교정원장 趙正勤교무는 『무주상보시와 수지독송의 큰 공덕을 나툰 화타원님은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화타원 대호법은 1919년 2월1일 전남 광주시 신안동에서 부친 김자성 선생과 모친 오보은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나 광주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유원종 선생과 결혼했다.

그러나 원기25년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부군의 열반을 당한 화타원은 방황과 좌절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37세 되던 원기41년 노은혜 교도의 연원으로 광주교당에 입교하면서 화타원은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을 맞게 됐다. 이때부터 유일한 낙이었던 술과 담배를 끊고 오직 이 공부 이 사업에 신성과 공심을 다 바쳤다.

화타원 대호법은 평생 삯바느질을 해서 모은 정재로 마련한 부지를 희사, 북광주교당 창립과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원기63년 金普信교무의 연원으로 북광주교당 부지 70평을 희사, 창립의 기틀을 마련했고 원기68년에는 북광주유치원 부지 1백69평을 희사, 유치원을 설립하게 했다. 그후 북광주교당 발전에 따라 원기73년에 부지 70평, 원기 75년에 1백44평을 각각 희사하는 등 총 4백53평의 금싸라기 땅을 희사했다.

원기73년 정식 법강항마위로 승급했고 원기 76년에는 대호법 서훈을 받았다. 원기78년부터는 북광주교당 고문으로 활동해왔다. 금년 2월 중앙총부에서 말년 수양생활을 계획하고 중앙수양원에 머물면서 대종사 성탑 참배와 일원상서원문 독송을 낙으로 삼으며 정진을 계속해왔다.

종재는 오는 11월 10일 오전 11시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갖는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