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어린이 눈에 비친 정산종사 열반시 운구행렬 광경

포항교당 임성천 교도부회장, 원기 47년 1월 28일 일기공개

<사진>임성천 교도

정산종사 열반 당시 운구행렬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 일기가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정산종사 열반 36주기를 맞아 공개된 이 일기의 주인공은 현재 포항교당 林盛天(호적명 南天.47) 교도부회장.

이 일기에는 원기 47년 1월24일 열반, 28일에 치뤄진 정산종사 운구행렬 광경을,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쓴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 상황을 마치 기자가 쓴 것처럼 구체적이고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 그날의 분위기와 정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저는 그 당시 이리국민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 선친(林鍾承)께서 원광대학에 근무하셔서 원불교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총부에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말씀을 듣곤 했습니다』

林교도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일기장은 총3권. 방학숙제로 학교에 제출했던 것이었는데 당시 담임이었던 韓旬澤선생(현 익산시 현대유치원 원장)께서 18년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1981년 10월11일 林교도가 부인 金誠熙 씨와의 결혼식 때 선물로 돌려준 것이어서 더욱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순택 선생은 林교도에게 일기를 선물로 주면서 「화혼을 축하합니다. 여기 조그마한 물건을 되돌려 보냅니다. 이글을 보면 전형적인 한국의 소박하고 단란한 가정생활과 林君의 생육사를 보는듯 그 어떤 글보다도 값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단란한 집안에서 페스탈로찌보다 자상한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20여년 보관하면서 그때의 모습을 되새기는 훌륭한 자료로 몇번이고 몇번이고 읽었습니다. 임군 자녀의 교육을 위한 가보로 삼으시기 바랍니다」고 적고 있다.

『저희 부부는 의외의 선물에 놀랐습니다. 스승님의 따뜻한 정성이 고마웠고, 그리운 옛 추억으로 남은 어린시절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일기장을 보신 주위 분들도 당신들의 이야기인양 좋아했습니다』

『이 자료가 정산종사님의 크신 위업을 빛내는데 일조가 되고 제자를 아끼신 스승님의 은혜가 드러날 수 있다면 저희 부부에게는 큰 보람이 되겠습니다』

林교도는 원기52년 이리교당에서 입교, 학생회와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해온 전형적인 원불교인으로 현재 포항제철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래 글은 林교도가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쓴 일기를 원본대로 실은 것이다. 이 일기는 포항교당 김정민 교무의 추천에 의해 임교도가 성주성지 순례길에서 만난 본사 송인걸 편집국장에게 전해졌음을 밝힌다.

일기/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구경”
<사진>정산종사 열반시 운구행렬 광경/임성천 교도가 공개한 일기 원본 일부


1월28일 일요일
오늘은 장례 행렬을 구경했다. 사흘전에 아버지 앞으로 부고가 와서 원불교 종법사님이 지난 24일날 세상을 떴단 말은 들어 알고 있었다.
오늘이 그 분의 장례날이라고 아버지께서는 아침 일찍 그 식에 참례하기 위하여 식장인 원광대학까지 나가셨다가 12시경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삶은 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집안 식구가 모두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세무서 건너 네거리로 구경을 나섰다. 약 500m 저쪽에서 행렬이 비치면서 순경 아저씨들이 네거리 근처의 교통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 근처는 구경꾼으로 꽉 차 있었다. 행렬이 우리들이 서있는 근처까지 오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맨 앞장을 선 스피이카를 달은 차가 우리 앞을 지나고 그 뒤에 원광고등학교 악대가 슬픈 음악을 연주하면서 따르고 바로 뒤에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흰 옷을 입은 두 청년이 공손히 받들고 걸어가는 뒤에 시체를 모신 영구차가 따랐다. 이 영구차는 보통 트럭에다 수도 없는 하얀 종이꽃송이와 검정 헝겊으로 덮어 그 모양이 마치 꽃수레처럼 꾸며진 것이었는데 앞 뒤 바퀴가 조금 보일 뿐 영구(널)는 물론 운전사도 보이진 않았다. 이 차에는 앞뒤로 네 줄씩의 굵은 끈이 매여져 있는데, 앞에선 검정 제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끌고 뒤에선 회색 장삼을 입은 중들이 끈을 잡기만하고 따르고 있었다.
깜빡 잊었지만 악대와 초상화 사이에는 원불교 표식을 그린 널다란 기 폭을 평면으로 들고가는 여학생들이, 그리고 그 뒤에 큰 붓글씨로 무엇인가 씌여진 기를 하나에 3사람씩이 세워들고 끼어 있었다.
세상을 뜬 종법사님은 올해 연세가 62살인데 20살 전부터 불교를 믿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원불교를 위하여 애를 많이 쓰신 분으로 평소에 아주 부지런히 공부를 열심히 하여 높은 덕을 쌓았다 한다. 나는 잘 알진 못하지만 오늘 내 눈 앞을 지나간 그 길고 긴 행렬에 끼어 따라가던 사람이 약 5000여명이라는 것만 생각해 보아도 그 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던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편 그 많은 사람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원불교도 전체의 약 1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대표들이라고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구차 뒤에는 하얀 소복을 차린 상인들과 원불교 윗자리에서 일 보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는 여자 교도들, 그리고 남자 교도들, 다음에 원광대학 취주 악대가 끼이고, 그리고나서도 또 여자교도에 또 남자교도의 순서로 가도 가도 끝없는 행렬이 아마 2㎞ 길이는 수월히 될 듯, 마치 무슨 강물이나처럼 말없이 조용히 흐르고 흘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 빠짐없이 상옷 대신 하얀 헝겊쪽을 목에 걸고 있는 것도 놀라운 장관이었다.
나는 오늘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구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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