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작은 호흡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동정간 삼매에 들 수 있어야
사회가 요구하는 동작으로 변한 것 아쉬워

단단한 몸매, 온화한 얼굴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의 눈매는 매서웠다. 밀양 시외버스터미널 2층에 자리한 금강승 불무도 도장에서 만난 노윤구(45) 법사의 첫 모습이다.

그는 지리산 야생차를 법제한 발효차를 따르며 스승에 대해 한마디 했다. 그의 스승은 관법수련인 불교금강영관을 발굴 복원하여 체계화 시킨 범어사 양익 스님(1934∼2006).

"좌탈입망의 상태로 열반에 드신 스승님은 평소에 본인이 안 해 본 것에 대해서는 단정짓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해보니까 이렇더라는 것과 옛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되어있더라는 말씀이 전부였어요. 한 번은 머리를 만져보라고 하셔서 만져보니 정말로 몇 군데 솟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스승님은 수행자로서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사셨어요. 그때 많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는 스승의 지도관에 대해 '놓아두고 살펴보는 정도'라고 표현했다. 한 동작을 반복해서 시켜 완성되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게 했다. 잘하고 못하는 기준보다 안 되면 별 말이 없었다. 이런 스승의 지도는 철저한데가 있었다. 불교금강영관이 인도를 거쳐 삼국시대에 전해져 내려왔으나 일제시대에 잠시 그 맥이 끊어진 것과 연관이 있다. 1950년 본격적으로 이어지게 됐으니 제자를 지도하는 그 심정이 짐작된다.

그는 동국대 재학시절 금강승 불무도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불교금강영관을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방학 때는 수련에 정성을 기울였다. 군 제대 후에는 스승의 배려로 수료과정인 3승형을 마친 후 하산해 부산에서 도장을 개설했다. 그러다 인도 여행을 떠났다. 귀국해서는 해마다 스승을 찾아 다녔다. 귀일처는 역시 금강승 불무도.

"금강승 불무도는 관법이기에 조화로움이 중요합니다. 몸과 마음과 호흡을 조화롭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마디 더하면 균형입니다. 균형이 깨지면 모든 것이 흐트러집니다. 조화와 균형이야 말로 진리입니다."

▲ 영정행관 모습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연마한 영정좌관, 영정입관, 영정행관을 비롯 영동좌관, 영동입관, 영동행관을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영정입관과 영동입관의 예를 들었다. 비교를 하자면 영정입관은 정적인데 동작이 많은 반면 영동입관은 동적임에도 불구하고 동작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정좌관, 영정입관, 영정행관의 부드러운 동작을 선보였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는 계속 이어지는 움직임 속에서 흐름을 관하며 선정의 법열을 느끼는 듯 했다.

"일반적으로 가만히 있으면 정적이고 움직이면 동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영정입관은 몸을 많이 움직여도 호흡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물 흐르듯 부드럽습니다. 영동입관은 안으로 흐르는 기의 흐름이 강력합니다. 외적인 동작보다 내적인 흐름에 비중을 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가 평소 수련을 하면서 차크라의 열림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율신경을 일깨워주고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심장과 위장에도 균형을 맞춰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런 움직임을 위해서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호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설명했다.

"모든 동작을 하는 이유는 바른 호흡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른 자세, 바른 골격을 만들어 가는 것도 귀결점은 결국 호흡입니다. 호흡이 큰 역할을 하지요. 가만히 있어도 삼매에 들어갈 수 있고 움직이면서 삼매에 들어 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작이 크고 힘이 넘치는 선무술인 영동행관이 TV에서 전부인 양 비쳐지고 있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는 또한 수련이 건강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원류와 상관없이 건강 쪽으로 나아가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어려운 동작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동작을 지도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이벤트화가 된다고 지적했다.

"수련은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수련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부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도장에서 수련을 하다보면 몸 자체가 바뀐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돼요. 본인들이 다양하게 느낍니다. 내 몸을 내가 아는 자체가 큰 진전이고 보람입니다. 그러나 건강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곳에서 씨앗을 뿌린다는 생각으로 수련생들을 지도하고 싶습니다."

그의 바람은 도장 안 좌측 벽면에 걸려있는 그의 스승인 양익 스님의 친필이 양각된 대금강문(大金剛門) 글씨가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그가 지도한 수련생 중 출가한 이도 제법 되는 것을 보면 금강승 불무도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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