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4:'수보리야 만일 선남자 선녀인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목숨으로써 보시할지라도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있어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구게 등을 받아가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하면 그 복이 심히 많으리라.'

금생에도 신명, 내생에도 신명으로 억겁 다생에 그 신명을 바쳐서 보시를 한다는 말이다. 그 신명을 바쳐서 하는 보시가 대단한 보시다. 전생에 빚 갚을 때도 이 신명을 바쳐서 갚는 보시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신명이 우리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대단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또 별것도 아니다. 내가 뻔데기를 좀 먹으면서 몇 생 빚을 다 갚나 그랬는데, 신명을 바쳐서 몇 생 빚을 다 갚나 그랬다. 소 같은 것은 그냥 평생에 일을 하고 죽어갈 때는 또 신명 바쳐서 뭇 사람들에게 고기를 보시한다.

이와 같이 항하사의 신명과 같은 것으로 보시를 하지만, 다시 다른 사람이 있어가지고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구게 등을 받아 가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하면 그 복이 더욱 한량없이 많을 것이다.

앞에서는 칠보 가지고 보시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서는 신명까지 바쳐서 해도 역시 그것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항하사 신명으로 보시를 하고 보시를 해도 내 마음 가운데 금강경 도리를 알지 못하고 나면, 사구게 도리를 알지 못하고 나면 끝내 망념과 번뇌를 제거하지 못한다. 상(相)도 제거 못하고 번뇌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쪽에서 복을 지으면 한쪽에서 죄를 지어 그게 전부 상쇄되어 버리면 헛일이 된다.

그런데 만약에 이 사구게를 가지고 다른 사람 일을 해 줄 것 같으면 자기 스스로도 망념과 번뇌와 사상과 중생심이 다 제거가 되고, 고마움 하나만 가지고도 복덕이다.

그런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위해 어느 사람이 이런 도리를 알고 느끼고해서 그 사람의 인격에 변화가 왔을 때,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데, 남을 위해 의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되겠는가.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렇게 했을 때 그 복덕은 한량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 32상 시늉을 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하되, 그 인격만 가지고 하는 것은 복이 하나도 없는 것이고, 참으로 상없이 이 법을 전하면 그것이 복덕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 꼭 그렇다. 내가 주고도 저 사람에게 원망받는 사람이 있고, 죄를 짓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하나도 안 주면서도 복을 짓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안 주고도 저 사람하고 항상 화합관계이고 인연관계를 성공시키는 사람이 있다.

인격의 밑천이라 하는 것은 온 천지에 미친다.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면 자연 복이 된다. 신명 밑천 다 바치고 삼천대천세계 칠보의 밑천 다 바친 것보다도 더 크다 그 말씀이다.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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