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춤' 그리고 '고성오광대'

▲ 제1과장 문둥북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춤' 또는 '무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탈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그러면 먼저 '춤'이란 어떤 뜻 일까?

우선 '춤'의 어원을 살펴보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점치는 무당을 이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학설이 있고 나아가 제정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에 왕이 신을 섬기는 신무를 춘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학설 등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과거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춤'이란 용어를 사용해 왔으며 '춤'의 표현이 사회현상 속에서 유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용(舞踊)이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신무용 발생 이후 일본학자 '쓰보우치'의 '신악극론'에서 최초로 사용하였고, 이는 무(舞)에 용(踊)을 붙여 만든 합성어로 '팔다리와 온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미를 나타내는 동작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쯤에서 아주 오래된 과거로 돌아가 원시시대의 춤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자. 초기 인간은 자신의 신앙이나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것을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치고 흔들며 큰소리를 내는 등 움직임과 함께 소리를 내어 표현하였다.

다시 말하면 원시적 표현은 인간이 느낀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인간의 천성적 율동의 바탕이며, 이는 오늘날 표현예술이 발달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원시시대의 춤은 감정노출과 언어표현의 수단이었고, 동작들은 자연의 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술적 동작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춤은 삶의 표현이자 생활의 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생활방식이자 삶의 표현 방식인 춤이 더욱 진화하고 세분화되어 현재 우리가 바라보고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춤의 장르로 남아 있는 것이며 그 중 하나가 '탈춤'인 것이다.

그런데 탈춤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일본, 중국, 동남아, 유럽 등 다양한 형태와 표현방법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남아있다. 그러면 도대체 탈춤은 무엇일까? 탈춤은 우리가 흔히 '가면극', '탈놀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탈을 쓰고, 춤을 추며 재담을 하는 오래된 우리의 공연예술이다.
이 탈춤은 언제부터 전해졌을까? 그 기원은 다양한 학설이 있겠으나 신라시대 이래 조선중기까지 지속된 가설무대 즉, 산대에서 공연한 연희란 의미에서 산대희(山臺戱 )기원설과, 서낭제 탈놀이와 산대도감극으로 나누어 논의한 산대도감극 계통설 등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춤' 즉 가면극은 13개가 있고 이 탈춤은 전승되어 오고 있는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를 지역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북한의 황해도지방에서 춤추어졌던 가면극을 '탈춤'이라 부르는데 대표적으로 봉산탈춤, 은율탈춤, 강령탈춤, 북청사자놀음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에서 전승되는 탈춤을 산대놀이라 하는데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가 그것이다.

또한 현재 경상도 지역에서 공연되는 탈춤을 '오광대'라고 하는데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가산오광대가 있다. 그리고 부산지방에서 연희되는 가면극을 야류(野遊)라 하는데 동래야류와 수영야류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동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가면극이 있다.

이러한 탈춤은 그 지역이나 놀이방식 등에 따라 기원이나 유래 특색은 다소차이가 있으나 그 표현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첫 번째 조선시대 신분계급에 대한 투쟁과 갈등을 표현하며, 두 번째 일부 잘못된 종교인의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세 번째 남녀간(처첩)의 문제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 제4과장 승무.

고성오광대의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아니하다. 고성오광대는 경남 고성에서 전승되는 탈춤으로 총 5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단절의 역사인 일제치하와 해방 이후 개발의 붐 때문에 많은 자산이 소실되는 고난의 시대를 지나왔다.

하지만 고성오광대는 단절의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실이 매우 드문 경우로, 해방 이후 곧바로 1946년 처음으로 공연된다. 이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고 197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 1974년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존하는 영남형 탈춤 중 가장 그 원형에 가깝게 전승되고 있으며, 극보다는 춤이 월등히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가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각종 해외공연과 학생전수 등 많은 활동 속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탈춤으로 인정받지만 그간의 과정은 고난과 역경의 극복과정이라 하겠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특히 뛰어난 두 분의 예인이 있었는데 고(故) 조용배· 허종복 선생이다. 고(故) 조용배 선생은 서화와 악기 그리고 춤에 두루 능통한 명인으로 전국방방곡곡의 예술인과 두터운 교분을 맺으며 경남의 고성오광대를 전국 각지의 예술인에게 널리 알렸다.

또한 고(故) 허종복 선생은 장신에 뛰어난 명무를 구사하여 고성오광대를 정교한 연출로 다듬었고, 오광대의 기본 춤사위 등 을 춤과 예술에 대한 안목을 바탕으로 고성오광대 전수교육의 기본적인 체계를 만드는 등 두 분의 우수한 예술적 역량이 결합되어 고성오광대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69년부터 개최한 대학생 전수는 2010년 현재까지도 이어져 여름과 겨울이면 전국 각지의 대학생 1000여명이 찾아오는 그야말로 '탈춤'으로 하나 되는 고성이 된다.

나아가 유럽과 미주, 동남아를 비롯한 각종 해외공연과 800여회의 국내공연 으로 이제 고성오광대는 명실 공히 한국을 대표하며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탈춤이라 할 수 있다.
문화는 사람만이 즐기고 느끼며 가꾸어서 미래로 전달하는 공동체적 유기체이다.

앞으로도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더욱 기대하며, 우리는 내일도 탈을 손질하며 그렇게 판을 만들어 갈 것이다.
▲ 황종욱 /
한국탈춤단체총연합회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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