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1: '이 때에 수보리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깊이 뜻을 알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하되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옛적으로부터 얻은 바 혜안(慧眼)으로 일찍이 이와 같은 경을 얻어 듣지 못하였나이다.'

14장은 상을 떠난 적멸한 자리를 말씀하신 장이다. 일체 상을 다 떠나버리고 적멸한 데 들어가는 부분이다. 수보리, 이 분은 깊이 그 뜻을 알아들으셔서 어찌나 감동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으셨다. 법문을 듣고 울었다고 하니 부황한 것 같으나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금강경을 하나도 몰랐지만 마음을 잡고 정진을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의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대종사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이 허언이 아니다. 실지가 그렇다. 정진을 해보면 수보리가 운다는 것이 하나도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진짜로 그렇게 되어져야 한다. 아직 내가 눈물이 안난다는 것은 내가 지금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수보리가 그렇게 슬피 우는 까닭은 또한 그가 수많은 수행을 통해서 지혜를 얻었으나 그럼에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처럼 깊은 말씀은 들어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도 수보리와 같은 심정으로 대종사님의 법문을 다시 받들어야 하겠다.

'세존이시여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 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면 곧 실상(實相)을 내리니 마땅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할 줄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이란 것은 곧 이 상이 아닐새 이런 고로 여래께서 이것을 실상이라고 이름하셨나이다.'

여기서 신심이 청정하다는 것은 '이것뿐이다,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오롯한 생각으로 충만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도 다른 것에 욕심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재색명리가 있을 겨를이 없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가서 놀아줄 시간이 없이 오직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 그 마음이 확립이 되어 자나 서나 죽으나 사나 오직 이것뿐이다. 이정도는 되어야 신심청정이라 한다. 보통 사람은 좋은 일 한 두개 하면 나쁜 일 두어 개 더 하고, 이런 식의 생활방식으로 사는데 그 나쁜 것이나 옳지 못한 것들을 깨끗이 청산시켜서 이제부터는 이 자리로서 실상(實相)을 삼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 형상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다 끝내는 우리 것이 아니다. 다 놓쳐 버린다. 그러나 영생을 통해서 내 것일 수 밖에 없는 실상은 오직 이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만은 가장 욕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다시 실상에 또 묶일까봐 실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상이라고 하신다.

만일 실상이라고 하는 것에 묶이면 그것은 실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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