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구전 민요의 매운맛

우리 구전 민요 가운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음악적인 감성이 풍부한 노래는 부녀요이다.
그 중에서도 기층문화권인 서민 문화를 향유하면서 살아온 우리네 할머니나, 어머니들 삶의 애환이 담겨있고, 문학성이 가장 풍부한 노래도 한 맺힌 시집살이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조 5백년 동안에 유교사상의 남존여비 사회에서 이 땅의 여인들은 거의가 연하의 남편을 만나 살아왔다.
특히 맏며느리는 자손의 번영과 함께 가정의 대소사 일을 도맡아 온 종부와 같은 고된 일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시집을 오면 시부모를 섬겨야 하고, 시동생이나 시누이를 키워서 시집 장가를 보내야 되고, 한편으로는 가정 일을 돌보느라고 그야말로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생활을 해왔다.

더구나 농촌에서는 농사일 돌보랴, 방아 찧어서 밥하고, 길쌈해서 가족들 옷을 해 입히느라고, 몸 돌볼 사이도 없이 이중 삼중으로 날 밤을 새면서 일을 해 왔다.

이제 시집살이의 애환이 담겨 있는 민요 가운데 '시집살이' 노래 몇 편을 사례로 들어 보자.
'성님성님 사춘성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 애고애야 말도마라 고초당초 맵다한들 / 시집보다 매울소냐.'

이 민요는 시집간 사촌 언니가 모처럼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아직 시집을 가지 못한 사촌동생이 시집살이가 너무나 고되다는 말을 듣고, 시집살이가 어떠냐고 노랫말로 물어왔다, 시집간 사촌 언니도 노랫말로 답해주었다.

이와같이 주고받는 노랫말을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4음을 기본음으로 한 4:4조로 맞추어서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스러운가를 느끼게 된다.

다음으로는 그 비유법에 있어서도 놀랍다. 매운 맛을 내는 우리의 고추와 당나라 고추인 당초에다가 시집살이를 비유함은 놀라운 수사법이다.

다음 구절을 다시 들어보자.

'시집올 때 가져온 다홍치마 횃대 끝에 걸어놓고 / 들어올적 나갈적에 눈물씻기 다젖었네.'
그 얼마나 시집살이가 고되고 또 서러웠으면 시집올 때 해온 다홍치마 한 벌이 매일 눈물 닦기에 다 젖었겠는가?

이어서 필자가 김제 외갓집에서 익살스런 이모님한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한 편을 들어보자.

'시집온 사흘만에 앵두 한 쌍을 따 먹었더니 / 여수같은 시누애기 오동통통 뛰어나와 꼬아 바쳐서 / 열두폭 주름치마 한폭 뜯어 바랑짓고 / 한폭 뜯어 송락짓고 / 깎고 깎고 머리 깎고 / 쓰고 쓰고 송락쓰고 / 지고 지고 바랑지고 / 들고 들고 목탁들고 / 짚고 짚고 주렁짚고 / 문전을 나서보니 / 화살 같이 빠른 길로 갈끄나 /활과 같이 굽은 길로 갈끄나.'

땅도 설고, 물도 설은 타향으로 시집을 온 색시는 시댁의 울안에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앵두 한쌍을 무심결에 따먹은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실제로 우리 집안에 할아버지 한 분도 열세 살에 열다섯 살 난 규수와 결혼을 해서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집안 어른들은 죄 들일을 나가고 없는 사이에 부엌일 하는 아내한테 깜밥(누룽지) 훑어 달라고 조르자 얼마나 성가셨으면 빈 항아리에다가 들어서 넣어 놓았다고 한다.

들에서 밭을 매고 돌아 온 어머니한테 일러서 하마터면 쫓겨날 뻔 했다는 할머니의 애처로운 이야기도 전해온다.

다시 김제 이모님한테 채록한 민요 한 편이다.

'낄낄우는 저 꿩은 / 시아버지나 드리고 지고 / 덥석덥석 덥는 쭉지는 / 서방님이나 드리고 지고 / 날랑날랑 주둥이는 / 시누애기나 드리고 지고 / 짤짤 휘비는 발목뎅이는 / 시어머니나 드리고 지고.'

이 짤막한 '꿩노래'에서도 당시의 한 맺힌 시집살이를 느낄 수 있다.
이제 이씨 집안의 큰 딸이 김씨네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가, 시어머니 등살에 쫓겨 가는 시집살이 노래를 들어보자.

'이씨네라 못딸애기 / 김씨네집 못며느리 / 시집 삼년을 살고나니 / 석자세치 요네머리 / 솔몽뎅이가 되었고나 / 박속같은 요내살이 / 미나리 꽃이 피었고나 / 시어머니 거동봐라 / 오던 질로 돌아가네 / 사인교를 집어타고 / 충남재를 넘어가니 / 난데 없는 꿩한마리 / 사인교로 굴러든다 / 뒤에오는 서방님아 / 저 꿩잡아 나를 주소 / 그 꿩 잡아 나를 주면 / 흘겨보는 눈꾸멍은 / 시어머니 상에놓고 / 모가지라 울댈락 헌 / 시아버지 상에놓고 / 짤짤 헤비는 발목뎅이는 / 동세님의 상에놓고 / 쫑굴쫑굴 주뎅이는 / 시누님의 상에 놓고 / 따둑따둑 쭉질락헌 / 임의 상으나 올려줌세 / 애도 담뿍 썩는거는 / 요내나나 묵어줌세 / 요봐라 하인들아 / 사인교를 둘러메라 / 요내문전을 들어오니 / 시어머니 거동봐라 / 삼간 마루가 뛰엄을 뛰어서 / 다꺼져가 나가는 구나.'

이 민요도 사촌 이모님한테 채록한 노래다.

이씨네 가문의 큰 딸 애기가 김씨네 집 큰 며느리로 시집을 갔는데 시어미 등쌀에 못살고 3년 만에 친정으로 쫓겨 간다.

마침 그때 가마를 타고 가는데 난데없는 꿩 한 마리가 가마 속으로 날아든다. 서방님 보고 꿩을 잡아 달래서 시댁식구들이 자기에게 저질러 온 행동에 빗대어서 꿩고기를 배분해 주는 대목이다.

며느리가 다시 돌아옴을 본 시어머니가 모둠발로 뜀을 뛰어 삼간 마루가 죄 꺼져 간다는 익살을 자아내는 노래이다.
그 토록 시집살이가 매운데도 시집을 못간 노처녀가 안달이 난 '노처녀 노래' 한 편을 들어보자.

이 노래도 이모님한테 채록하였다.

'고부랑 당그레 어데가 / 혼사 일사로 오셨다네 / 둥굴레 함박은 어디가 / 혼사 일사로 오셨다네 / 흔들레 조리는 어디가 / 혼사 일사로 오셨다네 / 도리 소반은 어디가 / 혼사 일사로 오셨다네 / 댕그렁 저분은 어디가 / 혼사 일사로 오셨다네 / 둥글레 밥식기 어디가 / 혼사 일사로 오셨다네.'

익살스러웠던 우리 이모님은 큰 방에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놀 때, 이런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시집살이 노래'를 부를 때는 눈물을 주체 못하던 여인들이 '노처녀 노래'를 부를 때는 '얼마나 시집을 가고 싶었을까' 하고 배꼽을 잡고 웃던 마을 아주머니들의 호박꽃처럼 소박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 박순호/원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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