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의 뜨거운 열정으로 교화개척과 인재양성에 정성

평생 교화개척과 전무출신 인재양성을 위해 온통 바친 삶을 살아오신 정타원 이정은(사진) 원정사. 맑고 고요한 새벽 선정에 들 듯 편안하고 자애로운 평소 모습 그대로 11일 열반에 들었다.

이에대해 김이현 원로교무는 "말년에 노환으로 고생하셨는데 의사의 지시대로 운동하고 치료도 하니 꼭 1년만에 완전히 달라지더라"며 "정타원 원정사를 보면서 다음 생 준비는 이렇게 하는구나. 완전히 모델로 삼고 공부하고 싶을 정도로 어떤 환경에 처해도 여여하신 모습은 체질화된 공부심법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로교무는 "가시는 그 시간까지 손으로 운곡을 맞추며 일원상서원문을 독송하는 의지와 시신마저 의학발전에 내 놓으신 것은 후진들의 표상이 됐다"고 회상했다.

원기62년과 67년 정수위단원에 피선, 원기76년에 종사 법훈을 수훈했던 정타원 원정사는 원기25년 부친인 응산 이완철 종사의 연원으로 신흥교당에서 입교한 후 이듬해 출가했다. 원기27년부터 구타원 이공주 종사의 지도 아래 분명한 일처리와 정확한 시간생활을 익히며 3년간 종두(鐘頭:종지기)의 역할을 했다.

원기31년 유일학림에서 수학하며 교화의 꿈을 키웠다. 정타원 원정사는 원기34년 부산교당 교무를 시작으로 산동·이리·서울교당과 마산교구장 겸 교감교무, 대구경북교구장 겸 교감교무로 봉직했다. 특히 이리교당에 15년 주석하면서 남중·동이리·임피·강경교당 등을 신설하고 오늘의 중앙교구 터전을 닦으며 교화 황금기를 보냈다. 또한 정타원 원정사는 서울교당 재직 시에는 구로·마포·성남·개봉·대방·충주교당을 연원했으며 소록도에 교당을 설립함으로써 한센병 환우교화에 새 장을 열어 원불교의 위상을 높였다.

정타원 원정사가 마산교구장으로 근무할 때는 창원 신도시에 신창원교당을 설립한 데 이어 산청·의창(현 동창원)교당과 수양원 창립을 주도했다.

정타원 원정사는 어려운 교화여건 속에 있는 대구경북교구장으로 부임하면서 묵묵히 실천교화로 교도들을 품안에 안으시며 지금의 대구경북교구청 대불사를 기적처럼 일구어 내는 소리없는 큰 도인이었다.

마산교당에서 간사시절 정타원 원정사를 가까이 접한 용인교당 성정진 교무는 "원정사님은 평생 교화계에 계시면서 교당에 항상 간사 2~3명을 훈육시켰다"며 "교무로 추천한 이가 33명에 이르고 100여명이 넘는 제자 교무들이 있을 정도로 말씀 없는 가운데 모두를 다 안아주었다"고 회고했다.

성 교무는 "교무들에게 팔베개를 내어 줄 정도로 딸처럼,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하나가 되어 사셨으며 '참 잘한다', '기특하다'라는 말로 후진들을 칭찬해 주었지만 당신은 항상 시간관념이 철두철미해서 모든 일과가 규칙적이었다"고 말했다.

정타원 원정사는 세수87세, 출가법랍은 68년 9개월로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5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 교단장에 해당한다. 종재는 4월28일(수) 오후2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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