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사색하는 능력 길러줍니다"

다양한 분야 접하는 계기 마련, 진로교육과 진학에 도움

▲ 학생들이 인문학 첫 수업인'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대해 경청하고 있다.

인문학적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개교한 지평선고등학교.
김제 성덕면에 위치한 이곳에서 40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들은 올해 3월1일 첫 입학식을 거행한 새내기들이다. 교과교실에 들어서자 진지한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1학기 수업 주제별 학습계획에 맞춰 수요일 마다 진행되는 인문학 수업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문학 수업은 각 교과목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한편 사유하고 사색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

정상현 교장은 "학생들은 수요일 3시간동안 실시되는 인문학 수업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의 기반을 위한 다양한 장르를 접하고 있다. 이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데 비중을 두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이번 학기는 교사 주도의 세미나 수업 비중이 크지만 학기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이 밤새워 준비하고 정리하고 발표하면서 주도해가는 수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술과 시대정신

3월 들어 시작된 인문학의 첫 수업은 미술과 문학을 연계해 반 고흐를 이해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번 수업에서는 중심 과제로 등장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강렬한 그림으로 서양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사람임을 알게 했다.

미술과·국어과 교사들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통해 37살의 젊은 나이로 1890년 자살할 때까지 879점의 그림을 남기면서 겪은 내용들을 이야기 했다.

수업은 초인적인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던 고흐의 삶을 깊이있게 이해 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동생 테오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안점을 두었다.
먼저 김홍일 미술교사는 고흐의 짧은 생애와 주요 작품들을 통한 그 시대의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자상하게 소개했다.

김 교사는 "그림 속에 묻어있는 시대 상황을 읽을 줄 알아야하고 그림을 통해 그 시대의 풍경을 볼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관심을 보인 고흐의 다양한 자화상을 소개한데 이어 가난한 농부, 우편배달부, 그를 마지막으로 치료했던 의사, 감자먹는 사람들, 슬퍼하는 노인 등 자기 주변 사람들을 많이 그렸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고흐의 여러 작품을 살펴보면서 자기 주변 세상을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화가였음을 소개한다.
잠시 후 김 교사는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와 연관된 음악이 있음을 암시했다. 음악을 통해 작품세계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한 배려라 보여진다.

'∼조그만 액자에 화병을 그리고 / 해바라기를 담아놨구나/ 검붉은 탁자의 은은한 빛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겠지/ 그린 님은 떠났어도 / 너는 아직 피어 있구나/ 네 앞에서 땀 흘리던/ 그 사람을 알고 있겠지∼'
작곡가 산울림으로 유명한 김창환 작곡의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이란 음악이다.

김 교사는 "하나의 그림을 보더라도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알고 그 속에 문학과 음악 환경 등을 이해한다면 미술 속에 흐름이 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후 김 교사는 1860∼1890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유파의 하나인 인상주의 미술에 대해 소개했다.
인상주의는 고흐의 그림과 연관되어 있다. 인상주의가 지향한 것은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았다고 볼 수 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 보다는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묘사했다.

김우재 학생은 "첫번째 시간을 마치고 나서 선생님이 많이 준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보니 몰랐던 내용을 배우고 안 보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편지로 풀어보는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였다.

▲ 정상현 지평선 중·고등학교장


테오에게 보낸 편지

고흐는 그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들은 고흐를 둘러싼 문화적 사회적 맥락과 관계가 있다. 이날 두 번째 수업에는 고흐의 주요 작품과 테오에게 보낸 몇 편의 편지를 시기별로 연관시키는 수업이 이어졌다.
박가영 국어교사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위해 준비했던 책을 소개했다.<반 고흐의 편지>1권이었다.

박 교사는 "편지 속에는 한 인간으로서 느꼈던 고뇌, 감정,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들어 있다. 이번 수업에서는 편지를 통해 고흐의 인생관, 가치관, 생애, 생각들을 알려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그림과 편지의 연결고리를 만든 셈이다.

박 교사는 고흐의 작품과 편지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다. 가끔씩 던지는 박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의 반응은 적극적이었다. 박 교사는 1882년 8월에 그린 '숲의 끝'을 보여주며 편지와 연결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 대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으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박 교사는 이 편지를 통해 고흐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 붓고 있다는 느낌을 전했다. 이어 1890년 1월에 그린 '파이프를 물고 귀를 싸맨 자화상'을 유추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간질발작도 일어나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편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굉장히 정신적으로 흔들리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내 버려 다오, 내가 정말 잘못했다면 나를 가둔다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릴수 있게만 해준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이렇게 볼 때 고흐는 테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박 교사는 고흐가 1890년 7월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그림의 해석이 굉장히 많다는 점을 전제로 했다. 자살하기 3일전에 쓴 편지 내용은 들쭉 날쭉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흐의 불안한 심경을 그대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박 교사는 "사망 당시 몸에 지니고 있었던 편지에서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죽음의 연관성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학생들에게 고흐가 죽고 나서 6개월 뒤 3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은 테오에 대해 이야기하며 관련서적을 제시하기도 있다. 심채은 학생은 "고흐의 그림과 편지를 읽는 동안 안쓰럽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수업이 괜찮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학생들은 미술수업과 문학 수업을 들은후 글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김홍일 교사는 "현재는 인문학 학습체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학생들이 인문학에 대한 수업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면 더 나은 방안들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방향

인문학 수업 참관을 마치고 정 교장과 함께 교정을 걸었다.
자연친화적으로 건축된 남녀 기숙사 앞에서 정 교장은 심화된 인문학 구상을 위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정 교장은 "고등학교 입학생은 지평선중학교 졸업생과 타 학교 졸업생들이 반반이다. 이들이 3년간 책을 읽고 연구하며 깊이 있는 세미나와 보고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은 차후 대학 선택과 관련해 진로 교육 및 진학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교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문학 수업 내내 진지한 표정을 짓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유와 사색의 진정한 의미가 느껴진다.

지평선고등학교의 개교철학

올해 3월에 개교한 지평선 고등학교의 개교철학은 다음과 같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개교정신에 입각하여 마음을 알고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이 되어 나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며, 세상과 조화를 이뤄 인류에 봉사할 줄 알고, 낙원세계를 이끌어갈 사람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능심능사(能心能事)의 마음자력을 가진 인간교육을 지향하며 과학·도학·인문학을 바탕으로, 배워서 알게되고 알아서 실천하는 참된 자력을 가진 인재교육을 실현하는데 있다.

인문학 교육에 대한 개념

지평선고등학교는 인문학적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학생으로 하여금 3년 과정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적 사유와 사색을 통해 학습 및 진로 결정에 탄탄한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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