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신 '영등 할망'

매년 음력 정월이 들어오면 바다에서든, 마을에서든 그 지역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의식으로 분주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3면이 바다에 둘러 싸여 있거나, 제주처럼 섬지역인 경우 바다를 향한 풍요의 기대는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해의 풍요에 대한 염원을 의식을 통하여 마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정성껏 기원하였다.

우리나라 해안지방 어민들은 바다에 생명을 걸고 고기잡이를 해왔으며, 험한 바다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어촌에서는 풍어제를 지냄으로써 바다에서의 여러 가지 사고를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 풍어제는 엄격한 유교식 제사와는 다르게 육지 또는 바다위에서 무당이 춤과 노래를 곁들인 굿을 하여 신명나는 제사를 이끌어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어제로는 마을제인 동해안 별신제와 서해안 대동굿이 있고, 선주를 위한 서해안 배연신굿이 있다.

해촌마을이 발달해 있는 제주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각 마을 마다, 포제, 당제, 잠수굿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 지역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있다.
제주도는 육지와 많이 떨어져있고,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섬인 유배지로써의 700여년, 조선시대 인조와 순조까지 약2세기(1629~1830)에 '도민출육금지령(島民出陸禁止令)으로 수많은 세월을 별국처럼 존속해 왔다.

제주는 멀리 배를 타고 나가는 선주들에 대한 문화보다, 인근해안에서 바다라는 자연환경을 터전삼아 인간한계를 넘어선 물질작업으로 제주여성들의 강인한 삶을 보여주는 해녀문화가 독특하게 전해진다.

해녀가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 놓은 산물은 잠수굿, 불턱, 노래 등 여러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해녀문화를 대변해 주는 당 신앙 중 하나인 영등신앙을 볼 수 있다. 영등신을 제주에서는 영등할망이라고도 부른다. 겨울과 봄의 전환기인 2월 초하루에 이 제주섬을 찾아와서 어부, 해녀들에게 생업의 풍요를 주고 2월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內訪神)으로 믿어지고 있다.

이 영등할망이 내왕하는 본향당인 칠머리당은 지금은 사라봉공원 안에 있으나, 1990년대 이전에는 건입동 포구에 있었다. 건입동은 본래 제주성 변두리의 해촌으로 어업과 해녀작업이 성행했던 곳이며 지금도 제주의 관문인 제주항이 여기에 있어서 옛 생업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칠머리당굿 전체가 영등신에게만 바치는 굿은 아니다.
일부 제차로 본향당신을 청해서 위하는 부분이 있고, 굿의 대부분은 어부와 해녀의 해상 안전과 어업의 풍요를 비는 영등굿으로 짜여져 있다. 결국 영등굿은 제주의 땅과 바다에 바람이 불어와 씨를 키우는 2월의 풍농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이 굿은 당의 신을 위할 뿐 아니라 어부, 해녀의 해상안전과 생업의 풍요를 빌고 영등신을 맞이하고, 치송하는 굿으로써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라는 점에서 특이성과 학술적 가치가 있다.

지금도 마을제의 형태로 제주시 건립동 칠머리당에서 전해져 내려오는데,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어 전승, 보호 되다가 2009년 9월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등재이유는 지역주민들에게 동일감과 세대를 이은 계속성이 있다는 것, 즉 풍요를 비는 마을제로써 이어져 내려온다는 점과 무형문화유산의 국내·외적 가시성에 공헌함과 동시에 굿의 인식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 문화재로써의 보호장치가 갖추어져 있다는 데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제는 단지 무속으로써의 굿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심방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설들 속에는 우리의 신화가 있고, 민속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풍요의 믿음을 "굿"의 재현 속에서 축제로 승화되어 지역주민들과 동화 될 수 있었다고 보여 진다.

세계에서도 문화적 정체성과 창조성의 증진, 문화적 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에 의해 세계무형문화유산 제도를 도입한 것처럼, 계속하여 내재된 민속문화를 발굴하고 드러난 유산을 꿰매어 문화 컨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실시해야 할 것이다.
▲ 오수정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 무형문화제 담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