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진리, 돈공頓空·광명光明·조화造化
진리 구하는 이 이외 더 구할 데 없어…우주만유 무한 위력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향기 머무는 봄날입니다. 우주만유가 사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진리의 무한한 위력과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은혜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은혜속에 살면서 아직 진리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고통의 삶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한 삶이라면 우리의 삶은 행복하고 은혜로운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일원상의 진리는 무엇인가? 일원상은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비롯된 진리의 상징이며, 일원상의 진리는 대종사께서 깨치신 진리관입니다.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진리를'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서게 해 주셨고 진리의 상징을 일원상(○)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1916년 4월28일 대각의 일성(一聲)으로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의 진리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김춘수 시인의'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하나의 꽃이 되었다. /

몸짓에 지나지 않은 꽃을 '꽃'이라고 이름을 준 시인처럼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진리의 이름을'일원'이라고 명명해 주시니 진리는'일원'이 되었고 일원은 진리가 되어 만상을 통하여 그 빛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진리의 상징을 일원상으로 밝혀 주신 것은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크나큰 혁명이며, 앞으로 신앙의 상징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는 사찰에 들어서면 고려시대 자각(慈覺)국사의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이라는 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옛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에도 일원상의 진리는 두렷이 존재하였다'라는 글귀입니다.

또한 정산종사께서는 "일원상은 우주 만물 허공 법계와 진리불의 도면이니, 견성 성불하는 화두요, 진리 신앙하는 대상이요, 일상 수행하는 표준"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시작도 끝도 없이 무시광겁을 통하여 돌고 돕니다. 우리는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하여 태어났고 오늘을 살아가며 어느 날 진리에 바탕한 조화로움을 따라 또 다른 생을 찾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 수행의 표본을 삼아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로 참 삶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 진리의 가장 함축적인 표현인 돈공(頓空)·광명(光明)·조화(造化)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 진리의 축과 신앙의 축을 형성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요약하여 보면

첫째는 일원상의 진리는 돈공(頓空)의 의미가 있습니다.

돈공(頓空)이라 함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선악업보가 끊어진 경지입니다. 마음 속에 분별망상이 다 돈망한 상태이며, 일원의 체성에 합한 마음, 텅 비어서 사량계교도 없는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이며, 언어 명상으로 표현 할 수 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대소유무의 분별도 없고, 생멸도 없으며, 차별도 없고, 가히 더 이상 비움의 경지를 표현 할 수 없는 지극한 상태로 내 마음이 청정의 진경에 이를 때 돈공은 내 안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 입니다.

둘째는 일원상의 진리는 광명(光明)의 빛이 있습니다.

'공적영지의 광명'은 그 빛이 시방에, 삼라만상에 두루하여 분별이 나타나고 차별이 생겨나고, 선악인과의 보응이 있고 육도의 변화가 있습니다.
마치 손바닥에 있는 구슬은 제 모습을 다 드러내는 것처럼 진리의 광명은 나타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돈공한 진리 자리에서 나타나는 공적영지의 광명으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과보가 호리도 틀림없으니 우린 결코 흐트러진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셋째는 일원상의 진리는 조화(造化)의 위력이 있습니다.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의 음양상승과 인과보응의 원리입니다.
성주괴공, 만물의 생로병사, 사생의 심신 작용에 따른 조화의 무궁함 또한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내리는 이 모든 것이 진리의 무궁한 조화입니다.

텅 비어 있는 일원의 자리에서 무한한 광명을 따라 우리 눈에 보여지는 자연과 인간의 모든 조화로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모든 진리의 작용이 바로 진공묘유의 조화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참 삶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일원상의 진리는 이처럼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한한 위력을 나타내는데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이 진리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행자지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원리편 2장에 "진리를 구하는 이가 이 외에 더 구할 곳이 없고 도를 찾는 이가 이 외에 더 찾을 길이 없으며 그 밖에 일체 만법이 이 외에는 한 법도 없나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때론 거센 바람이 불고 장대비가 내리며 눈보라 휘몰아치고 무서운 해일이 우리를 엄습 할 때 진리의 뜻을 모르면 망연자실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원상의 진리를 깊이 깨달아서 진리에 바탕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영원히 진리의 빛, 생명의 빛으로 감싸 줄 것입니다. 성불제중을 서원한 우리! 중생계를 벗어나는 삶, 돈공, 광명, 조화가 한데 어우러진 일원상의 진리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김홍선 교무 
   서울교구/ 여의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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