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삼밭재 기도 8년"

세상 끝에서 희망을 찾다
복 그룻 키우는 욕심만은 버릴 수 없어
주인의 길을 오롯하게 걸어온 평범한 신앙인

한 가닥 욕망을 비워내고 나면 얼마나 자유롭고 여유로울 수 있을까. 마치 비어있음으로 가득 찬 세상과 만나는 것처럼 홀가분해 보이는 공주교당 손수오(55) 교도.

그는 만나자마자 무작정 점퍼 안주머니에서 삼밭재 기도터에서 찍었다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인다. '삼밭재 기도꾼'이라 들었던 말이 순간 떠올랐다.

"뼛속까지 시리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삼밭재와 인연이 되었어요. 마치 보글보글 끓던 찌개가 바짝 타들어가듯 애가 탔지요. 공주교당 전명진 교무님이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당신 발목에 금이 간 줄도 모르고 삼동원 정기훈련을 마친 우리 부부를 이재철 선진님이 기도를 올리셨다는 설레바위봉과 이어서 대종사님의 기운이 서린 삼밭재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8년전 그 당시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사진에는 몹시 지쳐 보이는 그와 그의 아내 김현경 교도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설주택사업으로 잘 나가던 그였기에 뜻하지 않던 경제적 풍파는 큰 역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전 재산을 날리고도 모자라 부도를 내고 떠밀려 공주에 머물던 시기라고 했다.

"원불교와는 고등학교 시절에 인연이 되었어요. 학창시절에는 향타원 박은국 교무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지요. 그런 향타원님을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부여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그리고 저를 다시 공주교당으로 인도하셨지요."

부여 궁남지에 연꽃구경을 왔던 박은국 원로교무는 우연히 마주친 그를 "공주교당에서 주인노릇하라"는 각별한 당부와 함께 더 이상 좌절하지 않도록 마음의 끈을 교법에 묶어주었다.

"결국 현실을 피해 도망간 곳에서 살길을 찾은 셈이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대종사님의 삶을 다시 생각하며 삼밭재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처음 기도할 때는 '저에게 할 일을 주십시오, 다음 달에 꼭 다시 오게 해주십시오'라는 두 가지를 빌었지요."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그의 기도는 자의식이 약해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차차 변해갔다.

4∼5년 전부터는 삼밭재 기도실에서 기도를 올리는 대신 월초기도를 올리는 교도들을 위해 기도터 주변 청소로 기도를 대신하고 있다. 점차 기도가 삶의 목적이 되어갈 즈음 물질과 정신으로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는 그는 다시 기도의 위력에 대해 털어놓는다.

"더 이상 바랄게 없어졌어요. 특히 어려움 속에서도 자녀들이 반듯하게 성장하여 사회에서 쓰임새 있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가 모든 것을 보장해준다는 것을 느꼈어요. 기도를 통해 순리자연한 성리의 이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최근 그가 살아온 신앙수행과 인생 여정을 듣노라니 교당이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늘 처해있는 곳곳에서 스스로 당당하게 주인임을 자처하며 주인의 길을 오롯하게 걸어온 한 평범한 신앙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복 그릇 키우는 욕심만은 버릴 수 없다"는 그는 대종사님의 깨달음도 성현의 가르침도 모두 자신의 복 그릇의 크기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라며 기도도 결국 실천임을 거듭 강조했다.

"기도는 버릴 것이 없어요. 점차 다듬어지는 것이니까 쉬지 말고 계속하세요. 기도가 수단이 되지 말고 목적이 되도록 하다보면 기도하는 사람은 분명 알 것이에요. 설명이 필요 없어요. 그 안에서 성리가 열리면, 그때는 아무도 못 말려요. 그러니 흉내를 내더라도 형식의 틀이라도 갖추길 바라지요."

늘 자신의 자리를 무소처럼 묵묵하게 지키며 스스로 주인이길 고집하는 그를 만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는 기도를 통해 살아난 마음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철저한 주인정신으로 돌리며 살아가는 원불교 신앙인의 한사람이었다.

"원불교인이라면 누구나 공사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냐"며 오늘도 여전히 교당과 직장, 삼밭재를 오가며 스스로 선택한 주인으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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