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 법어, 실생활에 활용해 활불되라
우리 육근 사용할 때 원만구족 지공무사
시방세계가 다 나의 소유임을 알아야

▲ 조원오 교무 / 영광교구장

일원상 법어는 일원상의 진리를 믿고 깨닫는데 있어 가장 빠르고 기본이 되는 표준을 밝혀주신 법문입니다.
일원상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모습이요, 법어는 부처님의 말씀이며 또한 진리에 맞는 말씀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일원상 법어를 밝혀주신 까닭은 일원상을 표준삼아 적공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도록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일원상 법어는 대종사님께서 깨달으신 대각의 경지를 밝히고 육근동작에 법 받아 활용하게 하신 법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공부하는 본의를 저버리고 독단에 흐르거나 신비한 곳으로 향하는 일입니다.

일원상 법어는 올바른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진리와 합일하는 생활을 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가 출가 교도님들이 일원상 법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일원상의 진리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활불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째, 일원상 법어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일과 나와의 관계를 알아야합니다. 병든 사람이 치료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건강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의식(衣食)을 구하는 사람이 그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식구들의 안위(安危)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과 나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일원상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사은(四恩)과 나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관계를 알아야 정성이 나고 정성이 있어야 그 일에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기쁠 때도 있고 어렵고 힘들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일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괴롭고 힘든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입니다. 일원상과 나의 관계를 알아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깨닫게 되기를 염원합니다.

둘째, 이 세상 모든 일이 법어(法語) 아님이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일이 산 경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눈을 뜨면 경전을 보고 귀를 기울이면 경전을 듣고, 말을 하면 곧 경전을 읽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참다운 생각을 가지고 보면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게 됩니다.

산 경전을 읽는 사람은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게 됩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 이 모두가 법어입니다. 선한 일은 선 한일 그대로, 악한 일은 악한 일 그대로 세상을 깨우치는 거울이 됩니다.

따라서 눈을 사용할 때, 귀를 사용할 때, 코를 사용할 때, 입을 사용할 때, 몸을 사용할 때, 마음을 사용할 때 늘 일원상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일원상으로 보고, 일원상으로 듣고, 일원상으로 냄새를 맡고, 일원상으로 말을 하고, 일원상으로 몸을 사용하고, 일원상으로 마음을 사용할 때 일원상 법어가 되고 활불이 될 것입니다.

일원상 법어는 우리 공부인들로 하여금 물 마시듯 공기 마시듯 일원상의 진리를 실생활에서 활용하라는 큰 법문입니다.

셋째, 이 세상 모두가 알고 보면 둘이 아닙니다. 이 원상의 진리를 깨닫고 보면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장미는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흰색 검정 등 다양한 색깔이 있습니다. 사람도 흰색 황색 검정 등 다양한 피부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장미와 다양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 둘이 아닌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비록 색깔과 모양은 서로 달라도 장미꽃과 사람이라는 점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이치를 알고 보면 생과 사가 둘이 아니요, 동과 정이 둘이 아니요, 유와 무가 둘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이 그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까닭은 우주만유가 한 기운 한 이치로 뭉쳐 있기 때문입니다.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이치와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변화가 진리와 합일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둘이 아닙니다.

일원상의 진리가 신앙과 수행을 떠나지 아니하듯 일원상 법어가 일원상과 둘이 아닙니다.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마침내 강에서 만나 하나가 되듯 만법귀일의 소식 또한 일원상과 둘이 아닙니다.

대종사님께서 "둘 아닌 이 문에는 포함하지 아니한 바가 없다"고 하셨으니 일원상 법어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가 될 것인가 연구해 볼 일입니다.

넷째, 일원상 법어가 되려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해야 합니다. 마음이 모나지 않고 보면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사사(私事)가 끊어지고 보면 공심(公心)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눈 귀 코 입, 그리고 몸과 마음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육근(六根)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원만구족과 지공무사는 우리들의 신앙과 수행의 표준이며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 일원상의 진리 신앙 수행, 일원상 서원문에 이어 일원상 법어까지 밝히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원상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신앙과 수행을 통해 일원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해 주신 것입니다. 나와 일원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일원상이 되고 일원상과 내가 하나가 될 때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일하게 됩니다.

일원상의 진리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여 모자람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습니다. 지공무사한 사람은 마음 가운데 애착 탐착이 없으며 모든 일에 과불급이 없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은 원만한 인격을 갖추는 일입니다. 원만한 사람은 육근동작이 법도에 맞아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에 끌리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 일원상을 모시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체 받아 그대로 실천하는 삶은 곧 불보살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체 받아 실천하는 불보살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일원의 진리를 깨달아 시방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임을 알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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