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열의 상징, 정려정신

▲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는 고흥 류씨의 정려각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란 용어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등으로도 〈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 표기되어 있다. 가령, '정문을 세웠다'는 말은 정려를 받아 문을 세웠다는 뜻이다. 정려를 받는 절차는 그 고을의 관청 또는 대상자의 직계후손이나 고을 유림들이 중앙의 예조에 정려를 내려주기를 청하면 왕명에 의하여 명정(命旌)을 받게 된다. 과거 정려제도는 사회의 윤리도덕을 확립하여 인간의 기본 도리를 깨닫게 하는 상징성이 강한 기념물인 셈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옛 정려가 주는 가르침은 그 어느 때 보다 크다고 하겠다.

정려 사실에 대한 기록은 신라 때 효녀 지은에 대한 포상부터이며, 고려 세종 때부터 실시한 효자와 절부에 대한 포상은 고려 말까지 계속 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당시의 정려자 수는 효자, 효녀, 열녀 등이 모두 90여 명에 이른다. 이를 볼 때 우리나라의 정려 역사는 천년이 훨씬 넘는다고 볼 수 있다.

정부에서는 1983년 전국에 산재해 있는 정려에 관계된 모든 기념물을 일제히 조사했는데, 당시 4,326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형태별로 정려를 분류해 보면 비(碑)가 전체의 45%인 1,968개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비각이 926개(21%), 각이 595개(14%), 문이 563개13%), 비문이 268개(6%), 기타 32개(1%)인 것으로 집게 됐다.

효·열의 사례
정려의 성격 구성은 크게 효자, 열녀, 충신으로 나뉘어 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거하여 그 유형과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부모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상해하는 등 그 효성이 매우 뛰어난 경우로 전체 효자 중 과반수 정도가 이에 해당된다. 효자 하숙윤은 어머니가 악한 병에 걸려 다리의 살을 베어 술에 타서 드렸더니 병이 곧 나았다. 뒤에 어머니의 병이 다시 발하여 또 손가락을 잘라 구워 드렸더니 그 병이 영구히 나았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주자가례에 의한 3~6년간의 지극한 시묘생활을 한 경우, 특히 연산군때 상을 단기하는 법에 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지켜 중·종조에 정려를 받은 사람이 많았다.

▷부모 생전에 정성을 다하여 공양하고 효도한 사례

▷부모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걸고 구하거나 같이 사망한 경우이다.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지리에는 현풍곽씨 12정려각이 있다. 한 문중에서 이렇게 많은 정려가 내려진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물다고 한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다가 사망한 경우.

▷남편 생전 또는 사후에 목숨을 걸고 절개를 지킨 경우이다. 특히 고려말 왜적의 침입시 이러한 사례가 많았다.
또 젊은 나이에 혼자된 이후 재가 권유를 극구 물리치고 수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전 중리동의 낮은 야산에 남향으로 세워진 고흥 류씨 부인(1371∼1452)의 정려각을 방문했다. 유씨 부인은 유준의 딸로서 진사 송극기에게 시집갔으나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4살 아들과 함께 회덕의 시댁에 내려왔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잘 보살펴 훌륭히 키워 낸 부인은 조선 효종 4년(1653)에 열녀로서 정려각이 세워졌다.

▷남편 사후에 3년 이상 시묘살이를 하고 그 이후로 정성들여 제사를 지낸 경우.
▷남편이 사망한 후 식음을 전폐하여 끝내는 같이 죽음을 맞이한 경우.
▷남편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도려내는 등 정성이 매우 극진한 경우.
▷남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로 구하거나 같이 사망한 경우.

정려의 장소적 의미
정려는 개인에 대한 포상이지만 그의 성격은 문중이나 마을의 경사로 이해되었기에 정려의 위치는 대개 마을 입구의 길목에 위치한다. 길목이 아닌 경우는 양지바른 야산에 건립한다. 이는 효도하지 못한 사람이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고 뉘우쳐서 착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정려가 마을차원으로 기념화 되었기에 마을의 명칭이 '효'와 관련된 곳도 있다. 이는 향교가 있는 마을을 '교촌', '교리'라 하여 학교가 있는 마을임을 상징하려 했던 것과 같다.

이 시대의 충·효·열
이 시대의 충·효·열에 대한 것은 정부나 기관 단체의 포상이나 국민훈장 등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38회 어버이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효행자 이효영씨(65)는 31년 동안 당뇨와 치매, 중풍을 앓고 있는 91세의 노모 백은순씨를 봉양하고 있다. 또 불우한 청소년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 씨는 효행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공적을 인정받았다.

우리 곁에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효자효녀들이 많다. 하지만 정 반대의 현상도 나타나 늘 뉴스의 핵심이 되곤한다. 시대가 발달할수록 인륜지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기도 하고, 자녀가 부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강 오륜을 따르려는 정신은 이 시대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인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