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승한 교도·
    안양교당(논설위원)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거나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소통이라 말한다. 최근 수년간 필자는 중증치매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들이 보이는 다양한 표현에 대해 그 의미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문제, 즉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의사로서 환자와 그 가족들, 나와 우리 그리고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모든 삶의 요소들 사이에 어떻게 교감하고 교류할 것인가가 자연스레 화두가 되었다. 소통은 내가 필요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세상에서 어떤 인연을 맺든 반드시 해야 하고, 잘 풀어나가야 할 삶의 숙제이다. 모자라면 오해와 반목이 생기고 지나치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의 과정은 소통의 연속이며, 우리 주위에 매 순간, 모든 상황이 소통이 아닌 것이 없다. 깨어 있을 때는 내 주위에 있는 세상만물과 소통하고 있으며 잠을 자는 동안에는 지친 몸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생리학적으로 온전히 자신과의 소통이다. 물론 종교적인, 영적인 소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말로 하는 언어소통(verbal communication)이 하나이고 눈빛, 얼굴표정, 몸짓으로 하는 비언어소통 (non-verbal communication)이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소통만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람은 태어나서 말보다 먼저 다양한 비언어적 방법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느낀다. 그래서 비언어소통은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의사교환 방법이다.

반면 말로 하는 소통은 후천적으로 배워야 하며 교육과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된다. 진정한 소통은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이 조화롭게 전달되고 그 대상이 이를 진심으로 느낄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비언어소통이 더 설득력이 있고 대상을 감동시키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입으로는 아무리 좋은 말을 쏟아 내도 눈빛이나 표정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다면 감동적인 소통을 하기에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2일에 치러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야당의 압승으로 끝을 맺었다.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으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는데, 정부와 여당이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국책사업들을 진행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선거 후에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여당 관계자들은 소통이 부족했음을 반성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아쉬움은 무엇일까? 진정 소통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라면 잘못된 소통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통이란 근본적으로 쌍방향 통신의 형태를 취한다. 또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대상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고 동시에 상대방으로부터 긍정적인 신호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면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마치 어린 내 아이와 소통을 하듯이 말이다. 내 아이 뜻을 살피려면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부족하지만 무언가 표현하려 애를 쓴다. 여기서 서로 너무 성급하면 원만한 의사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서로 정확한 의사를 확인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적극적인 소통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이는 일종의 보살행(菩薩行)으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금 어떤 위치에 있던 서로 진정한 소통을 할 수만 있다면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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