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고열에도 교단사 걱정

주산 송도성 종사는 정산종사의 친 아우로서 교단 창립에 공헌했다. 1922년(원기7)에 출가하면서 '마음은 스승님께 드리고 몸은 세계에 바쳐서, 일원대도의 법륜을 크게 굴려 영겁토록 쉬지 않으리라'는 출가시를 소태산대종사에게 바쳤다.

8·15 광복 직후 그가 주도해서 발족시킨 '금강 청년단'은 뒷날 원불교청년회의 모체가 됐다. 또한 8·15 광복 직후 거교적으로 전개했던 전재동포 구호사업에 앞장 서 헌신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40세의 젊은 나이로 열반했다.

원기34년 3월20일, 여러 학인들이 문병을 왔다. 이때도 40도가 넘는 고열이었다. 그러나 주산종사는 의연히 일어나 정좌를 하고 낭랑한 어조로 말했다.

"진리는 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고 시방을 두루 해도 다함이 없으니 우리도 이 진리를 체 받아서 진리적 생활을 하자."

이 말이 학원생들에게 당부하는 마지막 교훈이 됐다. 열흘 동안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주산종사는 오로지 교단 걱정이었다.

"교중사는 어찌하고 떠나지." 정토를 바라보는 주산의 눈은 흐리고 음성은 착 가라앉았다.
"우리 교단의 발전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그러나 열반 이틀 전에는 모든 일을 다 잊고 게송을 가만히 외우기 시작 했다. 외우기를 마친 주산종사는 "그래 그렇지."

주산종사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입가에 평화로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고요히 눈을 감았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