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
생명존중, 평화지향 인간적 덕목이 우선
현실적으로 법률은에 대한 깊은 신앙 가져야
불편 불급한 법칙 개선 노력도 법률보은

▲ 강해윤 교무/서울교구 은혜의집
제가 교도소 교화를 통해서 맡아 왔던 사형수는 수년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사건의 주인공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직장동료와 의기투합하여 저지른 일이 점점 커져서 살인에 이르게 되고 그 살인은 제어장치 없이 내달리는 자동차처럼 얼마간 계속되어 무려 6명을 차례로 죽이는 엄청난 사건으로 번져갔고 한번 잘못 들어선 길에서 되돌아서지 못한 채 끌려 다니고 말았습니다.

검거 과정에서 공범 한 명은 도주 후 자살을 하고, 그보다 어린 한 명은 현장에서 붙잡혀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되어 서울구치소로 이송을 왔습니다. 직원의 도움으로 저와 그 사형수는 처음으로 교리공부시간을 갖기로 하고 마주 앉았습니다.

처음 원불교 상담실에 스물다섯의 젊고 멋진 청년이 들어서는 순간 그가 사형수라는 것을 도무지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건네 보았을 때도 그는 매우 공손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청년이었고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는 외식 요리사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우리가 매일 만나 보는 그런 보통의 건강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사형수가 되어 있었고 그 자신도 믿기지 않는 듯 직장 생활하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꺼내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게 사건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를 않았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에게 매주 두 시간씩 교리공부를 통해서 대종사님의 교법을 익히도록 성의를 다해 지도 하였습니다. 그도 나의 진심을 이해했는지 서서히 마음을 열고 공부에 재미를 붙여 교전쓰기 등을 하였습니다. 그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고 그 이후 7년 동안 이어진 이 긴 이야기는 현재까지 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모두가 입을 모아 그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고, 몰아세우면서 법정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와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그 방법으로 형량을 증가시키는 '강화이론'에 의한 범죄예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범죄자들을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때 훗날 자신이 잡혀서 그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형벌 위주보다는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더욱 건강하고 안전해 질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 구축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법률은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우리가 신앙해야 할 대상을 법신불 일원상이라 하시고 일원은 곧 사은이라 하셨으며 사은은 삼라만상이라 하셨습니다.

만물을 가득 싣고 생생 약동하며 살아 있는 천지은혜, 모든 생명의 끈을 이어주는 상하의 관계인 부모은혜와 동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횡적 관계인 동포은혜, 그리고 삼라만상이 제각각 존재의 가치를 발휘 할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법률은혜를 우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법률은은 마치 그물망처럼 만물을 연결해서 존재하게 합니다. 우주대자연의 순환 무궁하는 질서 속에 만생령이 제 모습을 갖는 것처럼 우리 인간에게도 상호 간의 계약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로 법을 어기게 되면 그 자신은 자유를 빼앗기게 되고 그가 속한 사회에는 불안감을 높이게 되니 이것이 법률 배은이 아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사형수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곁에서는 매일 시시각각으로 합법과 탈법의 경계선상에 거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무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방향 없이 내달리던 사람이 어느 순간 넘어져 땅바닥에 나뒹굴다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문득 발견하는 곳이 교도소입니다. 그 속에서 이제 다시 자신의 인생을 후회로 되돌아보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또는 아름다운 젊음을 마음껏 펼치며 살맛나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할 그 멋진 청년이 하루 하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극도로 제한된 영역에서 불안감으로 보내야 하는 사형수가 되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우리들 누구나 법률은에 대한 깊은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법률은혜는 단순히 모든 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철인의 언어처럼 악법도 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로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거나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불편 불급한 법칙을 개선하는 노력도 법률은에 보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목요일 제가 교화 활동을 하는 구치소에 법회를 보러 가면 가장 먼저 지나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정법을 위반해 군대가 아닌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적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선택적으로 구속상태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죄악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현행 실정법은 법률위반이라고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비폭력, 생명존중, 평화지향이 우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법률의 보호 없이 안전하게 살아 갈 수는 없으므로 법률은혜는 우리를 존재케 하는 신앙의 대상임을 철저히 알아서 스스로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게 지켜내는 법률에 금지하거나 권장하는 조항을 따라 순응함으로써 보은을 하고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에 근거하여 불합리한 법률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법률보은으로 우리 모두 낙원세상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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