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꾸밈으로 건강과 행복 염원

잠자리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베갯모는 베개의 양쪽 끝에 대는 꾸밈새로 주로 조그마한 널조각에 수(繡)를 놓은 헝겊을 덮어 씌워 베개의 양쪽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베갯모는 다른말로 '베갯마구리'라고도 칭한다.

일반적으로 베개는 천으로 베개통을 만들고 양쪽에 베겟모를 붙여 그 속에 팥, 조, 녹두, 쌀겨, 메밀껍질, 말린 꽃잎 등을 채워 완성한다.

베갯모에는 주로 네모난 것과 둥근 것이 있는데, 주로 남자의 것은 둥글고 여성의 것은 네모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男子)은 둥글고 땅(女子)은 네모지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들은 생활과 가까운 작은 소품 하나에도 정성을 듬뿍 담았다. 자투리 천 한 조각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갖가지 색실과 조각천들을 활용한 생활 소품들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화려함과 소박함이 돋보이는 자수 베갯모는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베갯모의 형태와 종류

〈고려도경〉을 보면, 이미 고려시대에 수베개를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흰 모시로 베갯잇을 만들고 베개통속에 향긋한 냄새가 나는 마른 향초를 채웠다. 그리고 베갯모에는 수실로 산화(山花) 따위를 수놓았는데, 그 무늬가 매우 정교하다고 씌어 있다. 베개 속을 향초로 채울 정도로 고려 귀족의 생활은 호사스러웠으며, 베갯모에 수놓은 꽃무늬가 정교하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당시 자수 솜씨가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베개의 종류는 형태와 재료에 따라 다양했는데 수침(繡枕), 퇴침(退枕), 목침(木枕,) 도침(陶枕), 곡침(穀枕), 면침(綿枕) 등이 있었으며, 베개 마구리의 모양에 따라 골침(골이 6개, 혹은 8개가 나도록 하여 골마다 수를 놓은 형태), 구봉침(九鳳枕:신혼때 부부가 쓰는 베개로 양쪽 베갯모에 1쌍의 어미 봉(鳳)과 7마리의 새끼를 아름답게 수놓음), 학침(鶴枕), 호침(虎枕), 연화침(連花枕), 수복침(壽福枕) 등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복 중의 하나로 꼽을 만큼 잠을 잘 자는 것을 건강, 장수의 비결로 생각했다. 따라서 편안한 잠을 돕는 베개, 그것은 인간의 생(生)과 사(死)를 함께하는, 꿈이 펼쳐지는 일종의 무대였던 것이다. 또한 베개는 잠을 자거나 휴식할 때 머리에 괴므로, 두뇌, 생명 활동과 직결된다고 여겼다.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을 따뜻하게 하라는 건강법은 누구나 아는 상식일 것이다. 또한 높은 베개를 베고 자면 명이 짧다는 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말은 삼천년을 살았다는 전설 속의 인물 동방삭이 종이 석 장을 베고 잤다는 말과 대비된다.

이렇듯 건강과 생명에 대한 관념이 신앙적으로 이어져, 길상문자와 길상문양을 베갯모에 수놓거나 그려 넣어 잠자는 동안 좋은 꿈을 꾸어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고, 또 이뤄질 수 있다는 주술적인 생각에서 베개 문양을 매우 중요시 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나 부귀(富貴), 장수(長壽)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따라서 베갯모의 장식과 정성 그리고 그에 담긴 염원은 대단하였다. 색색이 조화롭고 화려한 것 같지만, 실은 투박하고 소박함이 묻어나며 조각천을 잇고, 모아둔 각종 토막실로 온갖 꿈을 펼쳐보였다.

실이 모자라 한 송이 꽃의 꽃잎 색상이 한 장 한 장 다른 경우도 많다. 부족한 살림 속에서도 아기자기 모아 놓은 서민의 소중한 꿈을 담은 것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 아들의 출세를 기원하는 어머니,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며느리, 남편의 벼슬을 바라는 아내 등 베개를 누이고 잠이 들 가족에게 향하는 마음을 한 땀 한 땀 지은 것이다. 좋은 꿈을 꾸고 가족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서롭고 복을 부르는 갖가지 문양으로 다양하게 장식됐다.

노인용은 수복(壽福), 장생(長生), 가장들은 부귀(富貴), 다남(多男), 출세(出世), 젊은이들은 부부애로서의 사랑, 화목, 행복, 아이들은 사랑과 미래를 상징하는 식물, 동물, 곤충, 기하문 등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베갯모의 문양도 대부분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 장수를 누리는 것을 상징하는데,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 국화, 매화, 연꽃 등 꽃 종류와 장수를 나타내는 학, 사슴, 소나무 등의 십장생이 이에 속했다. 그밖에 강한 번식력 때문에 다남(多男) 상징문으로 가장 많이 쓰인 박쥐와 호랑이, 원앙, 봉황, 용 등의 동물 문양과 수(壽), 복(福), 희(囍), 강(康), 녕(寧) 등의 길상문(吉祥文)이 많이 쓰였다.

넓고 푹신한 서양 베개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인의 전통 베개는 그 모양이 육면체나 원통형에 가깝고 서양 베개에 견주어 푹신함이 덜하나, 꾸밈에 건강과 행복에 대한 염원을 담아 마음을 표현하고 기쁨과 복을 불러왔다.
▲ 이미석 / 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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