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워지는 그 곳

▲ 오덕훈련원 본관.
▲ 수동계곡바위.
▲ 축령산 숲길.
▲ 길 중간 중간 자리한 장승들.
소문난 기도터 축령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와 축령산을 잇는 30-4번 버스가 30여 분을 덜컹거리며 길을 달려 마침내 축령산 입구 버스종점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떨어져 있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고즈넉한 산골마을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계곡의 물소리도 반갑게 귀를 간지럽힌다.

배낭 끈을 질끈 동여매고 걸음을 옮기니 가장 먼저 맞아주는 것은 길가에 서 있는 장승들. 웃는 듯 화내는 듯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승들은 그 표정도 제각각이다. 축령산과 서리산이 만나는 기슭에 자리한 오덕훈련원을 향해 오르다 보면 길 중간 중간 이러한 장승들이 눈에 띈다. 이렇게 장승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소위 말하는 '기도발' 잘 받는 곳으로 꼽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축령산과 그 맞은편 서리산은 하늘에서 보면 하트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축령산과 서리산의 산자락이 모이는 곳이 바로 오덕훈련원 자리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한다. 축령산이란 이름 또한 태조 이성계가 축령산 산신령에게 고사를 지내고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덕훈련원 역시 기도 정성으로 불사를 이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아주 빈 소리는 아닌 듯하다. 2002년 정인신 원장이 부임한 이후 지금의 숙소동으로 쓰이는 맑은집·밝은집·훈훈한집을 지을 때도 건축허가 취소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천일기도 정성으로 불사를 이뤘고, 본관 역시 천일기도를 통해 건축을 끝마쳤다. 현재는 세 번째 천일기도가 진행 중이며 올해 8월이면 그 결실을 맺는다.

정 원장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력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타력 역시 중요하다"면서 진리와 소통하는 타력신앙인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움' 그 기적의 시작
오덕훈련원은 기도터로서도 그렇지만 본래 목적인 훈련원으로서도 많은 사랑을 얻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오르막을 조금 걷다 보면 어느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때마침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땀방울과 잡념을 훔쳐가고 청량함을 남겨 놓는다. 비움은 이렇게 시작 되는 듯하다.

조금 더 걸어 훈련원에 닿으면 '나'를 위한 비움의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진행되는 '열림의식'은 공동체놀이 등으로 진행된다. 한바탕 웃고 떠들다 보면 안과 밖으로 꽁꽁 잠겨 있던 마음의 빗장이 어느새 무장해제 되어있다. 열림의식의 관문을 지나면 율동을 곁들이거나 등을 맞대고 또는 손을 잡고 서로의 기운을 느끼는 염불명상과 주변 소리에 마음을 집중하는 소리명상, 절명상, 걷기명상 등이 세파에 찌든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수동계곡 바로 옆에 위치한 기도방은 명상을 하는 데 있어서도 더 없이 좋은 장소다. 방석을 펴고 한 번 두 번, 절을 올리는데 아담한 장소여서 그런지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 옆에서 흐르는 계곡물에 박자를 맞춰 절을 계속하다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던 근심걱정들도 계곡물에 씻겨 내려간다. 그리고 비로소 몸과 마음과 시간이 텅 비어진 비움의 시간을 맞이한다.

이렇듯 잡념과 근심걱정을 비우다보면 한 생각이 차오른다. 한 TV 다큐프로그램에서 비움에 관한 실험으로 잡념을 비우고, 대신 그 자리에 한 가지를 천천히 오래 생각하며 집중하고 몰입하는 천천히 생각하기 일명 '슬로우 싱킹'의 효과를 검증한 적이 있다. 분수의 개념을 잘 모르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을 비운 채 주어진 문제에 대해 몰입하게 하자 놀랍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5학년 수준의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이걸 보면 기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단지 몸과 마음으로부터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시작되니 말이다.

굳이 이런 기적적 효과가 아니더라도 비움의 프로그램들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산본병원은 직원들을 나눠 오덕훈련원에서 정기적으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같은 병원에 있지만 서로 바빠 이름도 모르고 지내는 직원들이 적지 않지만 이 훈련이 끝나고 나면 어느새 한 가족이 되어 있다. 참가자 대부분은 '몸과 마음을 비움으로써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내가 무엇에 묶여 살았는지 깨닫게 됐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지금은 원광대학교병원도 훈련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

볼거리 가득 안고 있는 휴양지
축령산은 계절에 따라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봄철이면 서리산의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연두빛 신록과 연분홍 꽃잎이 조화를 이루는 철쭉 터널은 이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또 축령산은 우리나라에서 야생화가 가장 잘 자라는 곳 중 하나로 봄철이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의 풍경을 맛 볼 수 있다.

장마가 지나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쯤이면 훈련원 옆 수동계곡은 맑은 물이 넘실거린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재미도 있지만 집안에 가득찬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더위와는 이미 안녕이다.

또 가을은 트래킹하기에 최적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축령산은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코스를 제외하면 길이 험하지 않은 편이어서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더욱이 산 건너편에 위치한 아침고요수목원과 자연휴양림을 연결하는 올레길이 조성되고 있다고 하니 더욱 여유롭게 자연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을이면 잎이 떨어져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다른 산들과 달리 축령산은 주능선을 경계로 동쪽에 150ha에 달하는 잣나무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잣나무숲은 예전부터 축령백림이라 하여 잣 생산지로 전국에서 제일로 꼽는 곳이다.
겨울에 잣나무 푸른 숲 위에 눈이 내려앉으면 그 광경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기에 더해 밤이면 달빛과 별빛이 살아 숨쉬니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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