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승한 교도·
    안양교당(논설위원)
국정농단, 영포라인, 패거리 정치, 불법사찰, 뒷조사, 권위주의적 행태, 음해, 정치공세 갈등고조 등등. 최근 신문과 방송매체에서 관심 있게 다루어진 내용들을 설명할 때 사용된 단어들이다. 모두 음울하고 치졸한 말들로 원만하고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해지며, 우울해 진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어찌 살아가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물론 사람 사는 어느 곳이던지 이런 저런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갈수록 빈번해지고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우리 사회가 왜 이래야 하는 건가, 혹시 나도 이런 혼돈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마음이 산란하다. 이런 상황들이 더 자주 교전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대종경〉 요훈품을 읽던 중 아랫배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 돈오(頓悟)적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그렇지만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하면서 눈앞이 밝아지는 참으로 오묘한 경험을 하였다. "자기가 어리석은 줄을 알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를 얻을 것이요. 자기가 지혜 있는 줄만 알고 없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점점 어리석은 데로 떨어지나니라" 라는 말씀이 평소와는 다르게 크게 느껴졌다.

똑똑한 사람이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똑똑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다툼과 갈등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주도권을 잡으면 자신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모아 패거리를 만들고 세를 과시한다. 흔히 하는 말로 '라인'을 만들어 공익에 해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편을 가르고 그럴 듯한 논리를 만들어 공격을 하면 음해요, 정치 공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심약한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은 제쳐놓고 그 라인에 줄을 서느라 끊임없이 바쁘다. 대종사님 말씀을 되뇌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똑똑함의 실체는 진정한 어리석음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명철하다고 믿었던 마음은 명철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하였고 크고 작은 욕심에 마음을 가려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었다.

가려진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나와 내편이라고 하는 사람들 외에는 옳지 않고 그러니 함께 할 수 없다는 잘못 학습된 인식, 즉 생각의 오류에 기인한 문제이다. 이는 왜곡된 프레임(frame)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함으로 나타나는 예상된 결과이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로,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사안을 해석하는 방식,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모두 표현하는 말이다. 따라서 힘 있는 사람이 잘 못된 프레임으로 타인이나 조직, 국가에 자신의 이익을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사용하고 그 후에 나타난 산물이 지금의 사회현상이다. 이 상황은 어느새 나와 우리 조직 가까이에 다가와 감당하기 벅찬 문제들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우리가 찾아서 반듯하게 지켜야 할 지혜는 무엇일까? 먼저 내 생각만을 고집한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판단하고 수행함에 있어서 합리적 프레임으로 원칙을 지켜가야 한다. 아집에 의한 원칙이 아니고 상생의 원칙이 필요하다. 또한 모든 일이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소중함을 다시 인식하여야 한다. 목적이 옳고, 결과가 좋다고 잘 못된 과정을 합리화하는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함께 일하는 사람은 공익심으로 무장해야 한다. 개인의 목적 때문에 조직 전체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화합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목표가 있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빨리 이루려 하면 이루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欲速不達). 이제라도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으니 앞에 놓인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간절히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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