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성(率性)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참된 성품의 원리를 알아 성품을 잘 거느린다는 의미이다. 전통 불가에는 솔성보다 견성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선사들이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견성을 독려하며 견성을 해야 큰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납도끼 이야기가 거론된다. 수도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여 솔성을 하자는 것인데, 솔성에 공을 들이지 아니하면 보기 좋은 납도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납도끼 이야기는 소태산 대종사가 〈대종경〉 성리품 7장에서 설한다. 보기 좋은 납도끼가 되지 않으려면 견성에 만족하지 말고 솔성을 해야 하며, 이것이 참 도를 얻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견성만으로는 도를 깨달아 실행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솔성을 통해 견성한 바를 실천에 옮기자는 것이다. 곧 견성만으로 성불할 수 없고 솔성이 뒷받침되어야 성불을 할 수 있다는 뜻에서 솔성을 하여야 참 도가 된다. 그리하여 전통불교의 수행법을 수용하되 솔성이라는 실천불교를 보다 강조한 의도에서 소태산은 솔성을 하여야 한다고 하여 불교 혁신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생활불교와 실천불교를 표방하며 원불교를 개교한 동기이기도 하며, 선불교의 견성에 만족하지 말고 정법신앙의 삼학 병진이라는 솔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소태산은 유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한 제자에게 〈중용〉의 솔성지도를 해석해 보라고 하니, 유가에서는 천지자연의 도에 잘 순응하는 것을 솔성하는 도라고 사뢰자, 대종사는 천도에 잘 순응만 하는 것은 보살의 경지요, 천도를 잘 사용하여야(솔성) 부처의 경지(〈대종경〉 불지품 6장)라고 하였다.

솔성의 중요성은 대종사를 계승한 정산종사에게도 잘 나타난다. 원기17년 깨달음을 얻은 후 작사한 '원각가'에서 정산종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솔성(率性)수도 하여보세. 솔성수도 하고 보면… 춘추법려(春秋法侶) 되었도다'(〈월말통신〉 38호). 솔성의 수도를 통해 선행을 닦아나가며 결국 영원한 불법을 실행하는 수행자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솔성과 계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전〉에서 밝히는 솔성은 불법을 긍정적으로 실행하자는 것이며, 계문은 주로 부정적 행위를 하지 말자는 뜻이다. '계문은 범치 말고 솔성요론은 잘 지키자'(〈월말통신〉 22호)라고 말한 이공주 선진의 '주의와 결심' 11조도 이와 관련된다. 소태산은 솔성을 위한 솔성요론 16조항을 밝히고 계문 30조항을 밝혔으니 일상생활 속에서 불법을 실천하자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따라서 〈정전〉 지자본위의 조목 1조에서 솔성의 도와 인사의 덕행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라고 강조하였다. 이에 솔성의 도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 솔성요론을 실천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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