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 말고 오직 깨침이 더딤을 두려워하라!

▲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세상을 바라본다.
▲ 파안미소를 짓는 박영훈 교장.

경남 합천군 적중면에 위치한 마음공부 학교인 원경고등학교(교장 박영훈). '마음대조를 통한 마음사용법'으로 교사직무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입소문이 났다. 원불교를 모르는 일반교사들이 많이 참석한다. 올해로 7기를 맞았다. 8월17~20일 진행된 연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30여명이 모였다. 원경고에 도착하니 이름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미타(彌陀)산이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조건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
마음대조 공부는 강연과 문답감정, 일기기재가 주를 이뤘다. 8월18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음공부의 실제' 공부에 들어갔다. 이 시간은 각자의 마음속에 힘들게 작용하는 마음들을 털어놓고 공유하는 시간이다. 10명씩 세부분으로 나누어 집중적인 회화를 했다.

샛별중학교 최희자 교사는 "남편하고 늘 부딪히는 게 집안 일 때문이다"며 "남편도 함께 집안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15년 동안 끊임 없이 요구했지만 변화가 없다"고 토로했다. 오랜 집안살림의 버거움 때문인지 최 교사는 말끝을 흐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참석자도 "30년을 같이 살아도 삭막한게 남편이다. 남편이 주변인처럼 느껴진다. 정말 남편이 '나를 사랑하기는 하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고 공감하듯 말한다.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교사로서의 고민보다도 가족과의 갈등을 털어놨다. 자식과 남편, 부모와 시어머니와의 관계 등이 불거져 나왔다.

박 교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문답감정을 했다. 그는 남편과의 갈등에 대해 "우리는 무언가 조건으로 행복해지려고 한다. 자기가 정해놓은 조건에 맞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며 "계산적인 내 기준을 내려 놓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결혼생활 20년인 신양초등학교 강미순 교사는 "집안 일을 내가 다 해야된다는 생각을 놓고 좀 지저분해도 살자는 마음을 먹으니 수월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이래야 된다는 틀을 스스로가 부숴버린 것이다. 원경고 심형보 교사도 "항상 부부문제는 과거의 것을 끌어와서 점점 큰 바위덩어리가 되어 해결을 못 보는것 같다"며 "지금 이 순간 현재만을 규정 짓고 구체적인 경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장은 "원인은 상대도 나도 문제가 없다. 다만 공부법에 들어가면 내 마음을 놓친 것이 문제다. 마음 사용하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마음 공부의 핵심은 내가 어떤 마음을 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음대조 공부는 발명이 아닌 발견 공부라는 것이다.

공부인과 비공부인의 차이
마음을 바라보는 박 교장의 강의는 열정이 넘쳤다. 그는 마음을 바라보는 성장과 기쁨에 대해 언급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내 생각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면 마음이 요란해진다. 공부인과 비공부인의 차이가 여기서 판가름 난다. 비공부인은 경계를 만들어낸 사람이나 상황을 탓한다. 상대를 바꾸려 한다. 내 생각과 경험과 지식으로 상황과 상대방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인은 경계를 대할 때 마다 가장 먼저 내 마음을 바라보고 대조 공부에 힘쓴다. 마음을 정확하게 바라볼 때 기쁨도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할 존재다. 대종사는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줄만 알아두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고 낙망하지 말라'고 했다. 망념을 없애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진다. 망념을 나쁜 것으로 단정 지으면 망념과 싸우게 된다. 그림자를 없애고자 몸부림치는 어리석음과 같다. 그렇게하면 마음만 상하고 에너지 소모만 따른다.

박 교장은 "불면증으로 20년 이상을 시달리다가 심히 괴로워서 끝내 등대에서 떨어지는 자살을 시도했던 분이 있었다. 그 불면증에는 마음대조 공부를 통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는 것이 바로 묘약임을 알아차렸다. 거의 1년 만에 불편함이 없을 만큼 치료가 되었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침이 더딤을 두려워하라'는 보조국사 지눌의 말을 인거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도 그 마음을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일어남을 바라보고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해야한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없다.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자전거타기 실력이 생기는 이치와 통한다. 마음도 계속 바라보기 공부를 하면 마음 실력이 늘어간다. 경계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를 괴롭히며 살고 있다. 내가 걸려 있으면 민감해지고 걸린 것은 분별성과 주착심이다. 공부할 때다.

한참 회화를 하고 나니 밤10시가 넘었다. 어둠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왔는지 청개구리 한 마리가 법당안을 뛰어다닌다. '어떻게 들어왔을까'라며 되뇌이는 마음을 본다. 그 마음을 바라본다. 바라만 보아도 번뇌는 깨끗해진다. 그리고 사라진다.

▲ 고심원 법당에서 근본 마음을 찾아가는 모습.
▲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깨운다..

 


처처불상·사사불공 속으로
다음날 오후 해인사 백련암을 향했다. 박 교장의 차에 4명이 동승했다. 운전을 하면서도 그는 문답감정을 쉬지 않았다. 산모인 대방초등학교 박혜영 교사를 일부러 챙겨 동석한다. 태교법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함이다. 박 교장은 박 교사에게 "최고의 태교법은 무엇일까요"라고 먼저 묻는다. 박 교사는 "태교를 위해서라도 학생들에게 화를 안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쉽지 않다"며 "아이가 출산되면 마냥 기쁠건지 아쉬울건지 두려운 마음도 든다"고 대답했다. 박 교장은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며 "고마운 마음을 내면 안정이 되어 지혜가 나온다"고 말했다. 은혜를 발견하는 눈이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만 고마운 것만 많이 느껴서 은혜의 실력을 키우라고 당부했다.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깊은 산속 백련암에 도착했다. 푸른 숲이 주는 치유력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내 싱그러워졌다. 긴 호흡을 내쉬며 백련암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고심원(古心院)이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박 교장은 "옛 마음은 곧 본래가 부처인 근본 마음을 표현한다"며 "성철스님은 자기를 바라보라는 말씀을 자주했다"고 강조했다.

고심원 법당에 들어서자 박 교장은 절에 모셔진 불상에게 절을 하듯이 부처인 자신에게 절을 하게 했다. 스스로를 자학하고 인정 못했던 자신이 부처임을 일깨웠다. 절을 올린뒤 불상이 아닌 세상을 향해 마주보게 한다. 처처불상·사사불공이 세상속에 있음을 인지시켰다.

성지여자중학교 최정화 교사는 참석 소감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속상해하고 마음 다치기도 하며 지냈다. 나름 연수도 열심히 다녀보고 자신의 성격을 고쳐야 된다는 생각에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시원치 않아 아예 자신을 '성격 장애'라고 단정지으며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다. 이번 연수에 참가하면서 은혜이고 은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오리무중에 헤매다가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는 해법을 배운 것 같다. 이른 아침 짙은 안개가 활짝 걷히는 태양의 기운을 받아 보는 것 같이 개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매순간 공부를 하면, 주착심에 빠져있던 여러가지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었다.

그에게 몇 일 안개속에 쌓여있던 미타산 자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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