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심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지옥

"제가 집에 없으면 고추장과 간장이며 나무 곳간의 장작을 도둑맞아도 아들과 며느리는 모를 것입니다. 도저히 안심이 되질 않아 계속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자손이 많고 가산이 부유한 노부인이 모처럼 총부에 입선하였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가며 한 말입니다.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착심이란 저렇게 무서운 것이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 기약이 없는 감옥으로 끌려가는구나. 세상의 감옥은 형이 다하면 나올 날이 있으나, 무형한 저 감옥은 한번 단단히 묶여 잡혀 들어가면 일생 내지 수천만생을 나올 기약이 아득하다. 자기 집안 부근에서 엎치락뒤치락 하여, 혹 기회가 좋아 사람 몸을 받을 수도 있지마는 그렇지 못하면 우마 육축이나 금수 곤충류 등 닥치는 대로 몸을 받을 것이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사랑으로 집착(애착)하든 증오로 집착(원착)하든 혹은 욕심으로 집착(탐착)하든, 무엇에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마음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 살아서도 지옥이지만,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그 대상만을 쫓으니 악도에 떨어지기 쉽다.

사람의 마음이 기울어 주착하게 되면 죽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도록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곳을 떠날 줄 모른다고 하셨다.
스스로 만든 창살 없는 이 감옥은 스스로 자각 하지 않는 한 나올 기약이 없는 것이다.

대행스님 법문에 "'나'라는 것은 공(空)해서 원래 없다는데도 불구하고 온종일 '나'를 붙들고 헤매다가 어느 새 해는 저물어 저녁이 되니 그만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

숨만 멈추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이 몸은 '참 나'가 아니다. 경계를 따라 수시로 일어나는 이 마음도 '참 나'가 아니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 '나'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내 몸' '내 가족' '내 명예' '내 체면' '내 자존심' '내 재물'하며 오로지 '나'만을 붙들고 살다가 어느덧 나이 들어 늙어지니, 그만 이 몸 벗어놓고 깊은 잠에 들게 된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오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평생 일 가운데 착심을 떼고 죽는 일이 제일 큰일이라고 하신 것이다.

전이창 종사께서는 '재물'에 대한 착심이나 '색(色)' '증오' '명예'에 대한 착심도 무섭지만, '정의' '충' '효'라도 집착하면 상대적인 것이 되어 해독이 된다고 하셨다. 나아가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나 성직에 대한 착심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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