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승한 교도·안양교당(논설위원)
"위장전입 하셨죠?" "죄송합니다" "부인이 투기 목적으로 사놓으신 거죠?" "노후 준비하려고… 저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2006년에 OOO을 만나서 골프치고 밥도 먹었잖아요. 어제는 왜 아니라고 했습니까?" "기억을 잘 못했습니다."

8월8일 개각 이후 열린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주고받은 대화들이다. 청문회 위원들의 질문내용도 그렇지만 나름 유능하고 경륜을 쌓은 분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그지없다. 몇 차례 유사한 경험을 통해 이런 청문회 모습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는 것을 보니 나의 도덕이나 사회적 정의에 대한 민감성이 둔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돈 버는데 있어서 남들이 이렇게 하면 따라하고 나만 하지 않으면 마치 손해 볼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행위들이 우리가 정한 사회준칙에 맞는지 사회적 정의에 벗어난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특히 경제적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나 사회 지도층들이 개인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보이는 변칙적인 사고와 행동양식은 원칙을 지키고 살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 보다 사회경제적 우월성을 세습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성경에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는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하여 이런 경향을 마태복음 효과(The Matthew effect)라고 하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쓴 미국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교육수준이 높다고 해서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품성교육과 당면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30년 이상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그의 책에서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가 정의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이런 철학 서적이 우리나라에서 30만부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흥미를 넘어 국민들이 도덕적 삶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심리적 욕구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전후 최근 50년 동안 세계 어느 나라에 유례가 없는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으나 국민의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가운데 진정 행복한 삶이란 물질적 가치기준을 넘어선 윤리와 도덕적 가치 추구가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 '생활 속 도덕실천운동'을 원불교인들 부터 먼저 시작해보자. 과거에 잘못은 철저히 반성하고 부끄럼 없는 현재를 살아야 하며 의(義)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함을 새롭게 인식하자. 쉽지 않은 길이고 누구나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기에 단호히 말하건대 우리 원불교도가 해내야 한다. 대종사님께서 담대하게 세상에 깨달음을 펼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지혜와 용기를 이어받아 원불교100년 도덕실천, 정신개벽 운동으로 새롭게, 그리고 더 높게 비상하자.

시인 조동화 선생은 '나하나 꽃피어' 라는 시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 나와 우리부터 시작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하나 꽃 피어/풀밭이 달라지겠냐고/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나도 꽃 피면/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나 하나 물들어/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너도 물들면/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이 순간부터 사은사요(四恩四要) 삼학팔조(三學八條)의 교리를 더욱 철저히 연마하고 실천하여 도미덕풍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바로 그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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