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다 마음도 그러하다

▲ 간절한 마음을 모아 '성주'를 독송하는 선객들.
▲ 김원명 교무(왼쪽)의 주례로 독경을 한다.

오전6시.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졌다.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다. 성주성지사무소(교무 김원명)는 매주 토요일 오봉산과 내봉산, 달마산을 차례로 산행을 하며 활불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로 3년째 접어들었다. 이번주 산행은 달마산이다.

활불훈련을 실시하는 성주성지를 향하는 마음이 망설여진다. '이 우중에도 산행을 할까' 의구심이 났다. 김 교무에게 산행여부와 관련 전화를 걸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는 비가와도 상관이 없는데요"였다. 그 한마디에 사량심을 내려 놓았다. 바로 성주성지로 향했다. 헤아릴 수 없는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쳤다. 무수한 번뇌의 실상을 보는 듯 했다.

한 모금의 물이 달다
오전10시30분에 시작될 산행을 위해 선객들은 미리 비옷을 챙겨 입었다. 그들에게 빗줄기는 반가운 손님인냥 얼굴에는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성주성지에 10년째 근무하는 김 교무. 활불을 리더하는 그의 산행 도구는 목탁과 전지 가위가 전부다. 달마산을 오르기에 앞서 정산종사 탄생가에 들러 심고를 올렸다.

산행이 시작되자 굵은 빗줄기가 제법 가늘어졌다. 달마산은 바위도 많은 우람한 산에 속한다.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거친 숨을 내쉰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산을 오르는데 대전교당 윤원심 교도가 "김 교무님이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다'고 했다"고 귀뜸해 준다. 그 말이 법문이다.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른다고 생각하면 힘겨움이지만 걷는다고 생각하면 평상심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전환을 유도했다.

1시간쯤 걸었을까. 몸에서는 쉴사이 없이 땀이 쏟아졌다. 탁한 기운이 스스로 정화됨을 느낄 때쯤 자그마한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비도 그치고 맑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반짝거렸다. 비에 젖은 달마산은 푸른 빛이 여실했다. 한 선객이 물을 건넨다. 한모금의 물이 달다. 꿀맛이다.

짧은 문답속 깨달음의 보석
자연스럽게 회화가 이어진다. 김 교무는 유수희 간사에게 "삼동 활불훈련에 다닌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다. 유 간사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정상의 맛을 알았다"고 답한다.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 교무는 대뜸 "정상이 뭐냐?"며 "정상은 내 마음에서 정한 것을 이루는 것이다"고 일깨운다. 짧은 문답속에 깨달음의 보석이 들어있다.

대구교당 이광연 교도도 성주성지 활불훈련을 한주도 빼놓지 않고 참석했다. 활불훈련의 산 증인이다. 이 교도는 몇년 전, 임파선염이 암으로 전이되는 상황이었다. 서울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였다. 응급차를 타고 온 곳이 이곳 성주성지다. 성주 삼동평화대학을 다닐때도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 그런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3년동안 꾸준히 산행으로 활불훈련을 하다보니 이제는 몸도 마음도 거뜬해졌다. 그는 "항상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마음의 힘으로 병을 이겨냈다"며 "마음을 챙기니 업력을 청소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명에서 벗어나려면 옛날 습관이 나온다. 진리에 맡겨야 벗어날 수 있다. 활불훈련은 천지의 사우나를 받는 기분이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경과 심고생활, 삼동평화대학, 활불훈련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

그런 이 교도가 요즘 근황을 고백한다. 그는 "최근에 몸이 급속도록 움츠러 들었다. 마음을 돌리고 세우기가 힘들었다. 몸이 아프니 서운했던 감정들이 일어났다. 업력이 틈새를 뚫고 들어옴을 알아챘다. 마음을 챙겨 집안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마음까지 청소가 됐다. 그러니 몸에서 땀이 나고 한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김 교무는 "아픔을 통해서 마음대조를 하는 모습이 오죽하겠는가. 견성을 안하면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다. 금방 썩은 기운으로 흘러간다. 천지와 하나되는 기운으로 살면 몸도 마음도 활력을 얻는다. 크게 마음의 폭을 잡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출발에 앞서 김 교무는 "빗방울이 잎으로 떨어지는데 방해되지 않게 걸으라"고 당부한다. 모든 사물에 공경심을 챙기라는 것이다.

김 교무는 산행하기도 힘든 숲길 사이 사이의 전지를 도맡아 한다. 김 교무가 전지를 할때 선객들은 거친 숨을 고르게 가다듬었다. 그 모습을 선객들은 소리없이 지켜볼 뿐이다. 업장의 무게도 이러할까. 전지하는 소리가 때론 크고 때론 작다. 마음도 이렇게 잘 가꾸라는 소리없는 가르침을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듯 했다.

산행 2시간째. 산이 점점 가파르자 선객들은 모두 조용해진다. 침묵의 산행길이다. 태풍의 눈속으로 들어간듯 고요하기만 하다. 자신과의 만남도 깊어진다. 선객들은 내면의 블랙홀 속에서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행의 묘미는 침묵이다.

기도·독경 겸한 산행의 간절함
활불 산행은 사이 사이에 기도와 독경을 겸했다. 산에서 올리는 참회게, 영주, 성주는 살아있는 기운으로 작용했다. 선객들이 영주7편을 올리고 '득도의 노래'를 부른다. '이 몸이 보살되고 부처되도록 나아갈뿐 물러서지 말게 하소서'라는 대목에는 간절함이 사무친다. 달마산 정상을 앞두고 성주 3편을 올린다. 영천영지의 기운이 하늘에 닿은 걸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법우(法雨)다. 선객들은 미동도 없이 기도일념에 몰입한다. 기도 소리는 허공법계에 가득히 메아리친다. 산행의 절정을 이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토요일은 산행을 하는 성주성지의 활불들. 정상에서 향을 사르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산행을 일과처럼 하다보니 생각이 커지고 마음도 넓어짐을 몸소 느낀다. 동대전교당 허묘성 교도는 "성지의 기운을 받고 산행하면 몸과 마음이 말끔해진다"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달마산 정상은 구름이 온 천지를 덮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때 김 교무가 '지금 이순간만 보라는 것이지'라고 혼잣말 처럼 되뇌인다. 과거심은 가히 얻을 게 없음을 관조시킨다. 지금 이 순간만 보기를 달마산의 정상은 소리없이 가르치고 있었다.

산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뒤 산을 내려왔다.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다'는 심경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딛었다. 마음도 그러하리라. '평상심이 곧 도'라는 말이 내내 길벗이 된다.

▲ 달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 구름.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