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방언은 내 것이 아니라, 만민의 땅이오!

▲ 황상운 그림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돈과 권세 만 있으면 최고야?"
"우리가 이룬 땅을 통째로 삼키려는 저 자를 그냥은 못나둬!"
"스승님,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방언공사로 만들어 놓은 정관평을 돈과 권력을 미끼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권세가가 일제관청에 들어가 서류를 낸 것에 조합원들의 분노와 억울함의 호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으시오.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을 할 게 아니라,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하시오. 모든 일은 올바른 쪽으로 결말이 나오는 법이오. 설사 우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들 저 땅을 누구든 차지한다 해도 그 것은 우리의 덕이 아니겠소?"

"애당초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이익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뜻인 바, 비록 그 사람의 차지가 되어 우리의 뜻이 어긋난다 해도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세상 만민의 하나이니 그리 섭섭할 것 없소."

"어쨌든 거기에서 나는 쌀을 누가 먹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시오. 농토를 일본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헐벗고 굶주리는 우리 백성이 먹을게 아니오?"

"이 어려운 시기에 영광 산골에 새 농토가 생긴다는 것은 누구의 소유이든 간에 모두 함께 기뻐할 일이 아니겠소?"
"아! 정말, 넓은 바다 같은 분이시지."
"누가 아니래."
"그래도 그럴 것이 목숨을 걸고 만든 땅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분노와 억울함을 참지 못하던 조합원들도 박중빈의 크고 넓은 성자의 마음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냉정을 되찾는다.
결국 영산방언공사로 만들어 낸 땅은 저축조합의 권리로 인정되었다.

삼복 더위 엄동설한
참고 이긴 보람으로
영산방언 튼튼한 둑
바닷물 막아내고
희망의 땅 만들었네.
만민의 땅 만들었네.
얼~사 좋다 얼~사 좋아.

박중빈과 조합원들이 권리분쟁에서 이기고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이 용감한 사람들은 85,800㎡(2만6천평)나 되는 드넓은 땅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4월26일 산간벽지 영산에서 개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것이다. 일본에게 농토를 빼앗기고 고향을 등지며 눈물을 흘리던 시기에 박중빈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 낸 땅이다.

영산방언은 스스로 일어나는 자립정신과 만민을 잘살게 하는 공익정신의 실천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소리 높이 외치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실천함으로 대중을 일깨웠다.
일제의 식민지 탄압에 맞서면서 더 높은 이상을 향해 굳세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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