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와 악도의 갈림길

'죽음'이 없었다면 종교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 범부의 보통 의식으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캄캄한 방에 홀로 들어서는 것과 같이 죽음은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만약 죽음 후의 세계가 편안하고 즐거운 곳임을 확신하다면, 그토록 두려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진 않을 것이다.

이생을 마치고 난 후, 과연 편안하고 광명한 세계가 열릴 것인가, 괴롭고 힘든 세계가 전개될 것인가?

대종사께서는 선도와 악도의 갈림길을 '하늘사람'과 '땅사람'으로 구분하여 말씀해 주셨다. 곧 욕심이 담박하고 생각이 고상하면 맑은 기운이 위로 오르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죽음 후에도 선도의 길로 들게 될 것이요, 욕심이 치성하고 생각이 비열하면 탁한 기운이 아래로 처져서 죽음 후에도 악도의 길을 면치 못한다는 말씀이다.

대종사께서는 자주 제자들의 기운뜨는 것을 살피시고 그 마음을 지도하셨다고 한다. 봉래정사에서 두 제자의 기운뜨는 것을 보시고 크게 싸울 것을 짐작, 경계하시기도 하셨다.

단전에 마음을 주하면 자연 기운이 내린다. 마음이 가는 곳에 기가 따르고, 마음의 색깔을 따라 기운의 청탁이 달라진다.

정산종사께서도 자기를 벗어나서 부모 형제 사회 국가 세계를 위하려는 마음은 기운이 맑아서 위로 뜨게 되고, 자기만을 위하는 정욕은 착이 많아서 기운이 탁하여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죽어서 새 몸을 받게 될 때에 마치 저울대와 같이 무거운 곳으로 기울어져 몸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속에서 살고 있는 무골충이나 동물의 뱃속에서 살고 있는 기생충 등을 지옥중생이라고 한다. 또는 마음으로 지옥을 만들어 무량 고를 받고 있는 범부 중생들의 생활을 현실지옥이라 한다. 욕심이 많으면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생각이 비열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자연 기운이 탁하여 아래로 처지게 되니 지옥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죽음 후에만 선도와 악도가 전개되는가? 생전에도 욕심이 많으면 온갖 번뇌가 치성하니 현실 지옥이요, 욕심이 담박하면 매사에 편안하여 현실에서 극락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수양을 하는 목적은 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기 위함이다.

죽음 후에 가는 길이 궁금한가? 스스로 '하늘사람'에 가까운가, '땅사람'에 가까운가를 반조해 보면 알 일이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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