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전이와 죽음 형태따라 중음 과정도 달라'

▲ 12연기와 천부경의 진리를 강의하는 구선스님.
▲ 구선스님이 '원신체'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죽는 순간 어떤 감정, 어떤 상태에 놓이느냐에 따라 사후 세계와 그 이후의 여정이 달라진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13일 진리·빛·은혜 아카데미의 '아름다운 죽음- 삶 이후의 삶'을 주제로 열강하는 영양 연화사 주지 구선 스님(태고종, 아름다운 세상 관(觀)수련회 설립)을 만나 죽음에 대한 다양한 현상을 들어봤다. 구선 스님의 강의는 원광대 교학대학 2층 회의실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6시40분에 진행되고 있다.

- '영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는.

불교에서는 생명의 근본에 대해 '천지만물은 불성(佛性)의 공(空)함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불성의 공함이 어떤 과정을 통해 천지만물로 변했을까?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영혼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게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부여잡고 내 자신을 비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또 다른 생명들과의 감응을 통해 그 의문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9년 동안의 사유를 통해 천지만물과 이 우주가 공(空)한 데에서부터 생겨나는 이치를 깨닫게 됐다.


- 죽음과 중음의 세계는.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서로 분리되는 현상이다. 어떤 경우든지 생명에게 오는 죽음은 늙음이나 질병, 정도 이상의 육체적 훼손으로 인해 생긴다.
생명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과 죽음 이후에 접하는 일들에 대해서 알고자 하면 먼저 중음(中陰)을 알아야 한다.

중음이란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서 죽음의 세계에 적응하기 전까지 육체와의 인연이 지속되는 시간이다.
중음의 시간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고 그 과정 또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일반적인 경우 중음은 49일간 겪게 된다. 하지만 죽음의 과정 자체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비정상적인 경우일 때는 중음의 과정이 일반적인 것과 다를 수도 있다.
중음의 시간을 통해 육체와 인연을 끊은 영혼은 이때부터 죽음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죽음의 세계는 철저한 인식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갖고 있는 의식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차원이 만들어지는 세계이다. 따라서 죽음에 들어가면 생명마다 스스로의 인식에 맞는 차원계에 거하게 된다.

중음이 시작되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 죽었는가에 따라 서로 다르다. 늙음으로써 수명을 다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가장 원만하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면서 중음이 진행된다. 그러나 병이나 정도 이상으로 육체가 훼손되어 죽음을 맞이할 때는 중음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망자(亡者)는 사후(死後)의 삶을 원만하게 살 수 없게 된다.

사후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은 바로 망자가 갖추고 있는 영혼의 몸이다. 영혼의 몸은 망자가 갖고 있는 의식 상태와 생전 삶의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르게 갖춰진다. 또 죽음의 원인에 따라서도 서로 다르게 갖춰진다.

- 영과 혼과 백이란.

영(靈)이란 생전에 육체를 갖고 있을 때에는 머리에 거하면서 생명이 갖고 있는 안·이·비·설·신·의의 여섯 가지 의식 작용의 근본이 된다. 그러다가 죽음에 임해서는 머리에서 몸쪽으로(심장쪽) 그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것을 일러 '영의 전이(轉移)라 말한다.

혼(魂)이란 육체를 갖고 있을 때는 몸을 이루는 기관 중에 오장이 흩어져 거하면서 생명이 가지는 의식 중, 감정이 발현되는 근본이 되고 또 안·이·비·설·신·의가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저장해서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죽음에 임해서는 각각의 장기에 있는 혼성이 거두어져 심장에 합쳐졌다가 머리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것을 '혼의 전이'라 한다.

죽음에 이르러서 영혼이 전이를 하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가 있다. 바로 수족이 걷히는 것과 회광반조(回光返照)의 현상이다.

수족이 걷히는 것은 사지에 힘이 빠지면서 점점 사지가 굳어지는 것을 말하고 회광반조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정신이 맑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수족이 걷히는 것은 육체가 갖고 있을 때 육체와 영혼을 연결해 주는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이다.

육체와 영혼을 연결해 주는 힘을 일러 '백(魄)'이라 한다. 이는 곡기를 통해 형성된 것이 있고, 호흡을 통해 형성된 것이 있으며, 본성에서 생성된 것이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수족이 걷힐 때는 손발이 점점 힘이 빠져 나가기 시작하고, 호흡이 점점 가빠지며 정신은 점차로 아득해져 간다. 이때 정신을 놓치게 되면 영은 머리에서부터 가슴 쪽으로 이동해 오고 혼은 가슴에서부터 머리쪽으로 이동해 온다.

이렇게 각각 이동해 오다가 머리와 가슴의 중간 지점인 인후에서 만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영혼의 전이'라 한다.

영혼이 전이된 후 인후에서 영혼이 만나면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스파크가 일어난다. 그때 육체는 순간적으로 따뜻해진다. 그런 후에 합쳐진 영혼이 몸을 한 바퀴 돌고 정수리를 통해 빠져 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혼이 전이될 때 정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육체를 떠난 뒤에 이틀 반에서 사흘째 되는 날에 깨어나게 된다. 이때부터 중음이라는 과정을 겪게 된다.

중음은 육체가 영혼을 빠져 나온 시간을 시점으로 해서 49일간 계속된다. 사람에 따라 그 이상의 시간을 요하는 경우도 있다.

-영혼의 전이와 죽음 형태가 중요한 이유는.

영혼의 전이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이뤄진다. 병으로 죽을 때와 사고로 죽을 때, 수명이 다해 죽을 때 각기 죽음의 원인에 따라 영혼이 전이되는 과정이 다르다.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할 때는 어느 부위 장기가 훼손되어 죽었거나 기혈의 흐름을 막아 죽음을 맞이한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 뇌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영의 전이는 원만하게 이뤄지지만 혼의 전이는 그렇지 못하다.

훼손된 장기 자체에 내재된 혼성이 순조롭게 걷히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영혼의 몸을 갖추고 나서도 그 장기와 연관된 의식 활동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간이 상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시각과 후각적 작용이 원만하지 못하게 되고 그 상태로 윤회에 들었을 때 그에 해당하는 의식 활동에 장애를 갖게 된다.

후자의 경우 영과 혼이 원만히 전이되더라도 그 후의 과정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한다. 영혼이 정수리 이외의 부위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영혼이 중음 기간 동안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갖추지 못하게 된다. 이럴 경우 중음의 과정을 통해 영혼이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지식도 얻지 못하고 윤회에 들더라도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항상 병치레를 한다.

사고로 인해 죽을 경우 병으로 죽을 때보다 훨씬 안좋은 결과들이 생긴다. 중음도 원만하게 지내지 못한다. 윤회에 들었을 때에는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상처가 어디였는가에 따라 그 부위가 불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수명이 다해 죽을 때는 성품이 온화하고 선근(善根)이 많은 사람은 영혼이 정수리로 빠져 나간다. 그러나 악업이 많은 사람은 영혼의 전이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해서 수족이 걷힐 때나 몸에서 빠져 나갈 때 큰 고통을 느낀다. 또 영혼이 정수리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코나 귀, 입으로 빠져 나간다.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많은 망자는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해 중음의 상태가 49일 이후로까지 연장되어 중음신이 된다.

우리의 생명은 무명(無明)을 통해 자기를 망각했기 때문에 고통의 굴레에 들게 되었다. 본성을 망각하지 않는 밝음을 얻어야 한다. 밝음을 얻은 생명은 윤회에 들지 않게 되어 진여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생멸문을 벗어나고 진여의 본체를 회복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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