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보호하는 감투할미

▲ 골무는 과거 여인들의 침선 용품이었으나 요즘 예술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우리가 늘 보아왔던 골무는 바느질할 때 바늘이 손가락 끝을 찌르는 것을 막기 위한 작은 종처럼 생긴 도구이다. 골무는 바느질을 할 때 바늘을 쥔 둘째손가락 끝에 끼워 사용한다.

최초의 골무는 BC79년 이전에 청동으로 만든 골무로서 화산폭발로 매몰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거의 모든 재료로 골무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우리나라에서는 BC1세기 낙랑고분에서 출토되어 이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골무의 기본 모양은 반달형이다. 재료는 가죽·헝겊 등이다. 골무에 태극·연꽃·나비·길상문자·새 무늬 등의 수를 놓기도 했다.

옛날 우리 속담에 골무를 '시어미 죽은 넋'이라고 했다. 바느질 하다가 손에서 빼어 놓은 골무가 잘 찾아지지 않아 일어서서 하던 일감을 모두 들추고 부산을 떨어야 찾아졌다는 이야기를 비추어 하는 말이다.

침선의 필수품
골무의 역할에 대해서는 사물을 사람에 비유해 나타낸 의인체 수필인〈규중칠우쟁론기〉에서 감투 할미가 자랑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규중 부인들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바느질 기구인 바늘(세요 각시)·자(척부인)·가위(교두 각시)·인두(인화 부인)·다리미(울낭자)·실(청홍흑백 각시)·골무(감투할미) 등 일곱 벗이 서로 자기 공이 크다고 다투었다. 그때 감투 할미가 말했다.

"노소없이 손가락 아픈 데를 눈치 있게 가리어 무슨 일이든지 쉬 이뤄 내게 하니 내 공도 없다 못할 것이요, 나는 매양 세요의 귀에 찔리었으되 낯가죽이 두꺼워 견딜만하니 아무 말도 아니 하노라.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없이 내 힘이 전장에 방패 앞서듯 하나니, 이 늙은이 없고는 되지 못하리라."

이 작품에서 감투할미(골무)가 세요 각시(바늘)와 달리 규중 부인들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의 처세술에 대한 은근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렇듯 골무는 바늘·자·인두·가위 등과 함께 침선의 필수품으로 규중 부인들의 총애를 받았다. 혼례날이 다가오면 여인들은 골무를 만들어 자신이 쓸 것은 물론, 혼수 구경을 오는 이웃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인사차 대소가(大小家)에 돌릴 것을 장만했다.

골무의 문양
골무를 만드는 법은 무명·광목·종이 등을 여러 겹으로 배접한 후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앞·뒷면을 따로 만들고, 각색의 자투리 천을 붙인다. 이렇게 만든 골무의 앞·뒷면을 이어 붙인 다음, 나무를 깎아 만든 골무 틀에 넣고 습기를 주어가며 인두질을 하면 입체적인 골무의 형태가 완성된다.

형태는 대개 반타원형으로 생겼으나, 반지처럼 원통형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겉은 주로 단(緞)을 사용했으며 쉽게 뚫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죽으로 만들기도 했다. 안은 손에 나는 땀을 흡수시켜 주려는 목적에서 무명이나 종이를 여러 겹으로 배접하여 잘 말린 것을 넣는다. 골무에 바늘이 닿는 부분은 바늘귀가 들어가지 않도록 무명실을 꼬아 돌려 붙이기도 했다.

멋을 내기위해 골무에 갖가지 문양을 놓아 사용했다. 문양은 꽃·나비·나선(螺旋)·박쥐·복숭아·불로초·새·석류·톱니 등이며, 특히, 남녀간의 사랑이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을 수놓은 것이 많다. 문양의 구성은 대부분 하나의 소재를 표현한 단위문 형식이나, 가끔 새와 불로초, 복숭아와 불로초, 박쥐와 나비가 함께 구성되거나 톱니문 혹은 여러 가지 색실로 여백을 장식하는 등 복합적인 형태가 보이기도 한다.

자수기법을 살펴보면, 꽃술이나 석류 열매의 알갱이에는 매듭수, 테두리에는 이음수나 징금수, 문양의 면을 메우는 데는 자련수나 평수로 표현한다.

예술품으로 승화되는 골무

어릴 적에 어머니가 이불이나 요, 베개의 호청을 빨아 다시 끼울 때에 이 골무를 끼고 듬성듬성 시침질 하는 모습이 기억난다. 어머니가 끼던 골무는 문양이 화려하지 않았다. 광목 몇 장을 포개어 소박하게 만든 골무였다. 골무는 요즘 쉽게 볼 수도 없고 사기도 힘들다. 인사동이나 옛날 도예나 공예처럼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요즘 한복 저고리 동정을 달 때면 종종 골무를 낀다. 처음에는 답답해서 바느질이 될까 생각했다. 하지만 바늘 끝을 밀어줘야 할 때는 골무가 손가락의 갑옷처럼 든든해 불편함과 답답함은 금방 사라진다.

언론인 이어령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반달 같은 골무를 보면 무수한 밤들이 다가선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민첩하게 손을 놀리던 우리 어머니, 그리고 우리 누님들의 손가락 끝 바늘에서 수놓아지던 꽃 이파리들, 그것은 골무가 만들어 낸 마법의 햇살이다"고 추억했다.

작은 반달모양의 손가락 감투 골무. 검지손가락이 골무를 만나면 바늘을 통해 또 하나의 물건이 완성된다. 그렇게 일상에서 탄생의 순간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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