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도 교도서초교당
필자는 전주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주에서 생활했다. 서울에서 대학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40년간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이 기간에 장교로 군대도 다녀왔으며,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아내도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얻었다. 아들은 남자답게 씩씩하고 건강하게, 딸은 여자답게 예쁘고 착하게 성장해 줘서 고맙다.

군 제대 후 곧바로 당대의 최고의 대기업인 대우그룹에 공채로 당당히 입사하며 그 직장에서만 27년간을 근무했다. 마지막에는 임원으로 퇴직하는 영광도 얻었다. 40년간의 서울생활 속에서 꿈의 직장인 대우에 근무하며 가족들과 함께 걱정 없이 순조롭게 즐거운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고맙고 소중했던 시절이었다.

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 '나는 사원이 아닌 사장을 대신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근무한 것이 보람이었다. '이곳이 나의 평생직장이다'라고 생활해 왔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필자도 나이가 들고 회사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퇴직 후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퇴직 후 중소기업에서 부사장으로 2년 근무한 것과 법인체를 만들어 짧게 운영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남은 인생을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지들과 사단법인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내는 결혼 전 중학교 수학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결혼하자마자 퇴직을 하고 두 아이를 훌륭하게 성장시켜줘 너무 고맙다. 아내는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서도 사회복지 공부를 해보겠다는 뜻을 세워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 최우수 논문상을 받는 등 복지문제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아내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사회복지사1급 자격증을 획득, 현재는 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들과 딸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문제를 고민하다가 원불교 교무로서의 서원을 하여, 졸업 후 곧바로 원불교학과3학년에 편입해 지금은 4학년에 재학 중 이다.

필자 또한 지난 5월에 '원기10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총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처형(교무)의 제안을 받았다. 아내와 깊은 상의 끝에 이제 남은 인생을 익산 총부에서 수양과 봉사를 통한 마음공부를 하면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먼저 원불교출판사 대표이신 교무님께서 이곳에서 같이 생활해 보면 좋겠다는 제의에 선뜻 답을 했고, 교정원에서는 원불교출판사 특별봉사자로 명했다. 서울 생활을 대략 정리하고 익산으로 이사하면서 아내와 함께 새벽에 대각전에서 올리는 기도가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고 있다.

내 인생의 진정한 이모작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원불교100년을 향한 대종사님의 포부와 경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가교도들의 적극적인 교단 참여가 절실하다. 특히 퇴임한 교도들이 인생의 이모작을 교단발전을 향해 다양한 방법으로 회상에 봉공해 보람된 인생을 설계했으면 좋겠다.

〈헌규〉 전무출신규정 제7장 보칙 제45조(특별봉사)를 보면 교단의 특별봉사에 대해 신심과 공심이 투철한 재가교도로서 일정기간 전무출신에 준하는 봉사를 원할 때 교정원장의 승인으로 교직에 근무할 수 있다. 그에 따른 처우는 용금 지급과 시상에 한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 교단이 원불교10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교단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교도들의 일손이 매우 필요하다. 전문직으로 퇴임한 교도부터 다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원불교100년을 향해서 함께 할 때 교단의 미래는 더욱 크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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