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산으로 가는 길

▲ 황상운 그림
백지혈인 특별기도가 끝난뒤 박중빈은 송규를 부안 봉래산 월명암으로 먼저 보내 견문을 쌓도록 한다. 새로운 신앙을 펴기 위한 기초 다지기에 들어간 것이다.

"송규, 수양을 쌓으려거든 늘 내 마음부터 가다듬어야 하거늘 월명암에 머무는 동안에 세상을 바로 보는 법을 터득하도록 잘 보내게."
"예, 스승님의 말씀 명심하여 뜻을 이루겠습니다."

송규와 송도성에게 제법의 길을 비쳐주고 그 자신도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길룡리를 떠난다. 그가 간곳은 김제 금산사다. 금산사에는'내가 죽은지 50년 후에는 여기에 올 것이다'라고 말한 50년 부활을 믿는 증산 교도들이 모여든 곳이다. 여기에서 중빈은 제자 성섭과 짚신을 삼으며 증산 교도들과도 잘 어울린다.

증산 교도들은 6척 장신의 키에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고 늠름한 기상을 하고 있는 젊은 중빈과 그를 모시는 장대한 성섭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게 된다.

" 아, 저 초막에서 머무르는 두 젊은이 봤지?"

"보다 마단가, 얼굴에서 광채가 흐르는 걸 보니 도인임에 틀림없어, 아마 우리 교주가 떠난지 50년이 되었으니 증산님이 부활로 온 게 아닐까?"

"아니야, 내가 보기엔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순사를 피하여 숨어사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수근 대는 사람들이 늘 때 증산교 신자 하나가 졸도하여 위독한 상태가 되었다. 박중빈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마에 손을 얹고 묵념을 한다. 그러자 환자가 눈을 뜬다.

"금산사에 미륵불이 나타나셨다!"

"살아있는 부처가 금산사에 나타났다!"

중빈이 산부처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독립군 잡기에 혈안이 된 김제 경찰서까지 퍼져나간 것이다.
"나오지 못할까? 수상한 너를 잡으러 왔다."

중빈이 갑자기 경찰서로 잡혀가 1주일 동안이나 시달리다 초옥으로 돌아온다.
"스승님,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뭘 힘들어. 세끼 밥 주지, 물 주지, 잠재워 주지 거기가 극락이더군."

모인사람들에게 능청을 부리며 웃기까지 한다. 그러나 중빈은 할 일이 너무 많다. 새로운 신앙을 펴려면 교리와 제도를 제정해야 한다. 봉래산으로 가는 길이 바쁜 것이다. 금산사에 머물며 앞날의 계획을 가다듬을 수 있어 좋았다.

영산 길룡리에 돌아왔던 중빈은 송규가 머물고 있는 월명암으로 떠난다. 법성포에서 범선을 타고 위도 앞을 지날 때 풍랑을 맞는다. 세찬 바람이 불고 성난 파도가 배를 삼켜 버릴 것처럼 덤벼든다. 배안이 비명과 토하는 소리로 아수라장이다.

"정신들 차리시오! 정신을 잃으면 안됩니다."
오로지 바위처럼 끄덕도 하지않는 박중빈의 말을 듣고 배탄 사람들이 진정을 한다.

해질녘에 배는 무사히 곰소항에 닿고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월명암으로 향한다. 월명암에 도착하니 새 회상 법을 마련코자 먼저 떠나보낸 송규와 백학명 주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월명암에서 십여 일을 묵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자 되기를 원하며 몰려와 좁은 암자는 사람들로 넘쳐나 실상사 곁에 초가 한 채(봉래정사)를 사서 이사를 한다.

봉래산 계곡의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여기저기서 새들의 노래 소리 듣자니 금방이라도 신선이 내려 올 듯하다. 박중빈의 가슴 속에 품어왔던 새 회상의 강령들이 봉래산 층층 바위에 쌓이는 아침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