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62: 자력양성이 왜 수행문이 아닌 신앙문의 4요에 들어 있나요?

답: 신앙문의 4요는 결함된 차별 세계를 일원의 진리에 바탕 해서 평등세계로 개조하기 위해서 인생으로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네 가지 요긴한 법을 말하는데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 교육, 공도자 숭배로 되어 있습니다. 이 4요가 왜 수행문에 있지 않고 신앙문에 있느냐가 저희 종교적 특징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원불교가 창립되던 당시의 한일합방으로 우울하였던 한국 사회의 무력한 사회상을 잘 반영하는 법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당시 종교도 타력신앙이 주가 되고 있기도 하였지만 일제하에서 희망을 잃어버리고 일상생활에서도 남에게 의지하여 자활의지를 포기한 무력한 시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원불교는 〈정전〉 자력양성의 강령에 보면 '자력이 없는 어린이가 되든지, 노혼(老昏)한 늙은이가 되든지, 어찌할 수 없는 병든 이가 되든지 하면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한 바에는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여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힘 미치는 대로는 자력 없는 사람에게 보호를 주자는 것이니라'는 강령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불교의 스님들이 탁발이라고 하여 일을 하지 않고 걸식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불교혁신론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는 불교에서도 중국 당나라 때 백장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의미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이라는 선종의 유명한 법규를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력양성의 조목이 신앙문에 있는 이유는 그 당시의 말세론에 기인한 사이비 종교의 난립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제의 압력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정신적인 돌파구로써 1860년 동학운동 이래 사이비 종교가 난무하였던 것입니다.
자력양성 없이는 정법과 말법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어서 맹신의 늪에 빠지게 되는 시대상에서 신앙문에 자력양성의 조목이 들어가게 된 측면이 강한 것입니다. 일찍이 공산주의 사상가 마르크스는 종교를 가리켜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마약 같은 것이다"고 혹평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종교가 다 마약이 아니고 "자력양성이 있는 종교는 정신을 개벽하는 신약, 자력 양성이 없는 종교는 정신을 혼미 시키는 마약이다"라고 정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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