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광 교무·원광대학교(논설위원)
애시 당초 콘텐츠라는 용어는 책이나 논문, 내용 목차를 지칭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혁명에 의해 디지털화된 정보 일체를 의미하는 쪽으로 확대되어 사용된다. 따라서 각종 프로그램, CD롬 등 문자, 소리, 영상이 융합된 정보 일체를 망라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교화 콘텐츠라는 매우 제한적인 의미로 아니 좀 더 좁혀 경전에 국한하기로 한다. 그 배경은 적어도 경전은 교리의 근간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적 교감의 가이드라인 역할에 굳이 긴 담론이 필요 없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전이라고 말하면 될 일인데 왜 굳이 콘텐츠라는 외국어를 사용하는가? 경전은 교리를 소통하는 문자 메시지의 통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문자 메시지만으로는 요즘 세대들과 소통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콘텐츠는 활자매체를 통한 메시지의 통로뿐만 아니라 소리와 영상, 문자가 복합된 정보를 의미하기 때문에 확대된 의미체계를 내포하는 장점을 눈여겨 볼 따름이다. 그마저 여기서는 활자매체로 구성된 경전 자체만이라도 새롭게 소통의 통로로 다가서길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지금의 경전이 이 시대와 나아가 앞으로 미래 세대들과 소통이 용이할까 생각해보자. 정전의 원전이 되는 불교정전의 출현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뤄졌다. 또 이 불교정전을 오늘의 정전으로 편수하여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우리 교단 총력의 결집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심혈을 다 했다. 한편 여기에는 당시의 시대, 사회, 문화, 인적, 물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투사되어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대종사께서 친제한 교전이라는 점에서 어느 이웃종교의 그것에 비해 소중함과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도 남는다.

문제는 정전 결집 당시의 문자가 엄밀하게 말하면 오늘날의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실제로는 국한문 혼용체가 많은 편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쉬운 우리글의 기준이 지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지금의 경전 문자 메시지 형태로는 지금도 그렇고 미래의 사람들과 소통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대종경에 "우리는 경전도 그 정수를 가려서 일반 대중이 다 배울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편찬 할 것이며"(서품18장)라고 하셨다. 적어도 경전의 디지털화는 아니어도 쉬운 우리말로 거듭나도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경전을 다시 편찬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경전 원본은 그대로 두되 지금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글로 된 주석서나 해설서가 절실할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현재 교단내 외국어로 된 경전이 이를 대신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전의 외국어 번역본은 비록 우리의 경전이지만 다른 문화의 그릇에 담겨져 있어 문화의 중첩성 뿐만 아니라 단순히 외국어로 번역된 것 이상의 의미 즉, 경전의 또 다른 주석서로 이해될 가능성 까지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하튼 정전이 이 시대 보통 사람들과 호흡하도록 하려면 현재의 경전 보다는 소통이 쉬운 우리 글로 다시 개발될 여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호흡하지 않는 언어 문자는 사장될 위험이 항상 내재할 뿐 더러 아무리 훌륭한 종교의 메시지라 할지라도 어떤 콘텐츠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파급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현재의 경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니 앞으로 새로 편수되는 경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난제는 과연 누가 쉬운 우리 글로 콘텐츠화할 것인가이다. 요즘은 소프트웨어 즉, 내용이 중요한 시대이다. 그런데 그 교화 콘텐츠로써 경전을 이해하기 쉽고 접근 가능하게 하는 노력도 결국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그 해답도 인재로 귀결된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런 인재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절감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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