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살아있는 사람들이 돌아봐야 할 이야기

▲ '염쟁이 유씨'를 연극하는 유순웅 배우.
▲ 대학로 이랑씨어터의 '염쟁이 유씨' 연극무대.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연극이 있다.
1200회 공연을 했지만 또 다시 1년 장기공연에 돌입한 연극 '염쟁이 유씨'(김인경 작·위성신 연출, 이랑씨어터). 내년부터는 해외공연도 진행된다.

17일 오후8시 관객들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응원하는 열기를 뒤로하고 '염쟁이 유씨'를 만나기 위해 하나둘 객석을 채웠다. 20~60대 연령대인 관객들은 1인 15역의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치는 유순웅(48) 배우의 공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 연극 '염쟁이 유씨'의 작품 줄거리는

유 씨는 조상 대대로 염을 업으로 살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염장이다. 평생을 염을 하며 여러 양태의 죽음을 접하다 보니, 그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또한 남다르다. 유 씨는 어느 날 일생의 마지막 염을 하기로 결심하고 몇 해 전 자신을 취재하러 왔던 기자에게 연락을 한다. 유 씨는 기자에게 염의 절차와 의미를 설명하며 염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어왔던 사연을 이야기 해 준다. 조폭 귀신과 놀던 일, 오로지 장삿속으로만 시신을 대하는 장의 대행업자와의 관계, 자신이 염장이가 되었던 과정, 아버지의 유산을 둘러싸고 부친의 시신을 모독하던 자식들의 한심한 작태, 그리고 자신의 아들 이야기 등. 마지막 염을 마친 유 씨는 관객들에게 말한다. '죽는 거 무서워들 말아, 잘 사는게 더 어렵고 힘들어'라고….

-'죽음'을 소재로 연극을 하게 된 동기는

연극은 우리 생활 속의 가장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래서 연극이나 드라마는 모두 사랑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야기는 너무 많다. 식상할 수도 있다. 작가와 토론하는 과정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충분한 소재가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만 우려할 점은 죽음을 생각하기 싫다거나 멀리하는 경향이 있어 연극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를 극복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극복하는 방안 중의 하나가 연극 전개 도중 이야기 되는 몇 개의 테마이다.

- 배우가 바라본 삶과 죽음은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축제처럼 받아들였다. 초상을 하는 3일은 술 먹고 웃고 떠들었다. 그러면서 고인을 떠나보냈다. 그러한 과정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라 보았다. 가족들 역시 울면서 망자를 이야기하며 치유하는 것이다. 이 연극을 통해 그러한 과정을 다뤄보고 싶었다.

- 이 시대의 삶과 죽음에 대해

요즘은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 그래서 죽음 역시도 아무렇지도 않은 남의 일처럼 여겨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는 아픔이고 돌아봐야 할 이야기이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 어이없는 죽음이 많다. 죽음이 가볍지 않고 귀한 죽음이 되려면 삶이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어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살기 힘들 때 자살을 선택한다. 물론 우리 시대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돈 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경향이다. 요즘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종교인들이 할 일이 많다. 우리 같은 연극배우들도 너무 가벼운 이야기만 다룰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연극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나 싶지만 사회 현상에 귀 기울이며 치유해 갈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연극이 될 수도 있고 종교의 가르침이 될 수도 있다.

- 잘 살고 가는 삶은 어떤 삶인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면 된다. 가족을 위한 삶, 공동체와 마을, 사회, 더 나아가 나라를 위한 삶이라면 아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다. 그 삶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를 위한 삶이고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 대한 고뇌를 가진 삶이면 좋은 삶이라 본다. 그러한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나는 존경한다.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해지려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이 시대 상황이 어렵지만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나아질 것이라 본다. 좋은 시대가 올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 위해 한 가지씩 이라도 나누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 연극을 진행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

가끔 관객 속에서 나온 이야기가 감동적일 때가 있다. 어떤 부부가 암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 전 공연 한 편을 보자고 왔다. 아내는 남편이 수술을 잘 받고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울먹였다. 그때 관객들도 따라 울었다.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 어르신은 연극에서 염하는 과정을 보고 '그거 틀렸다'며 한 수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공연이 중단되기도 한다.

- 1200회 연극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각성이 있었다면

작품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특히 관객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90여 분 관객과 호흡한 그는 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대사를 외친다.

"죽어 석 잔 술이 살아 한 잔 술만 못하다구들 허구, 어떤이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허는데, 사실 죽음이 있으니께 사는게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게여. 하루를 부지런히 살면 그날 잠자리가 편하지.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인 게여." 죽음이 삶의 한 과정임을 역설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그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사를 듣고 훌쩍 훌쩍 눈물을 닦았다. 저마다 가슴에 담은 인연들을 떠나 보내기라도 하듯 이내 공연장은 숙연해 졌다. 그러한 빈 공간 틈으로 그가 관객들에게 물었다. "부모님이 영정사진 찍어오거나 수의 사들고 오시면 어떻든고." "그럴 땐 말이여. 그런 부모 이상하다고 마음에서 밀어내지 말고 그냥 경건하게 받아들여."
그가 부모의 입장에 서며 죽음을 준비하는 어른들의 심경을 설명했다.

그가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속에 내포되어 있다. '죽음을 준비 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삶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내겠다는 것임을…' 그는 관객들과 공유하고픈 것이다.
"편히들 가시게, 죽는 것 무서워하지 마시고, 잘 사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거든…."

그가 연극을 마치며 관객들에게 던진 작별 인사다. 그 말이 어떤 관객에게는 충고로 받아들여 졌고, 또 다른 관객에게는 삶의 희망으로, 다시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유로 다가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염장이를 통해 삶의 가치가 가슴 속까지 진하게 전해오는 늦은 밤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