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리에서 용의 알을 품는 사람들!

▲ 황상운 그림
일제 속, 암흑의 시대에도 희망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가난으로 옷은 허름하고 손은 거칠었으며 얼굴은 해 빛에 검게 탄 모습이었으나 눈동자 만큼은 희망의 별이 되어 반짝거린다.
봉래제법을 이룬 이들은 새롭고 굳건한 의지로 뭉쳐 금방이라도 봉래산 하늘을 나는 기세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어둠의 이 땅을, 병든 현대사회의 모든 인류를 향한 교화의 횃불을 올리겠다는 의지가 두렷하다. 이들은 교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교법을 완성하였고, 그 제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을 때다.

"스승님!"
"중안이가 어찌 이른 아침부터…."
이른 아침 박중빈을 찾은 사람은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여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 김제에서 면장을 지내다가 봉래산으로 들어와 교리를 공부하는 서중안이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인류를 구원할 스승님께서 더 넓은 곳으로 가시어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앞길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생각이오. 지금까지 그대들과 꾸준히 준비해 왔으므로 이제는 산을 내려갈만하다고 생각하오. 우선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오."

박중빈과 수행자들은 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길룡리는 박중빈을 낳은 새 회상의 요람이지만 좁고 구석진 곳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니기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런데 박중빈의 발걸음은 길룡리를 먼저 향한다. 1923년 여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슬픔과 구도생활의 발자취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옥녀봉의 교당을 넓은 곳으로 옮겨 새로짓고 힘찬 새 출발을 다짐한다. 그리하여 불교의 참법을 가르친다는 소박한 이름으로 불법연구회로 정한다. 1924년 6월1일의 일이다.

그들은 다음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는다. 제자들과 박중빈은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가난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넓은 곳, 언제라도 쉽게 모일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를 새 회상, 새 터전으로 정한다.
1924년 11월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에 수행자들의 정성과 땀으로 두 채의 초가가 세워진다.

자기들의 삶과 굳건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운 불법연구회 회관을 건설한 것이다. 회관은 시대적 고난을 함께하며 수행자 스스로 세상의 빛이요 등불이 되고자 하는 힘찬 출발의 뱃고동인 것이다.

불법연구회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과수원을 가꾼다. 이들은 산속에서 자기만의 수행이 아니라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생활 속의 수행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의 하는 일에 호기심을 갖고 견학하러 오는 사람, 시찰하러 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난다.

"불법연구회의 부처님은 어디에 봉안하였습니까?"
"우리 부처님은 외출중입니다."
"아니, 걸어다니는 부처가 있단 말이오."
방문객과 박중빈의 말이 오고가는데 농기구를 멘 산업부 일꾼들이 나타난다.

"저 사람들이 다 우리의 부처님이랍니다."
"뭐라구요? 저 사람들이 부처님이라니요?"
"맞습니다. 저들이 산부처님이고, 신룡리에서 용의 알을 품는 사람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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