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처불상이니 학생이 곧 부처님
사랑으로 감싸고 언제나 배움의 자세 놓지 않아야

▲ 모상준 원로교무.
▲ 김동규 교도.
봄 햇살이 깨달음의 따뜻한 기운을 타고 조용히 흐르던 원기27년 4월 모상준 원로교무는 조실에서 소태산대종사를 처음 친견했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 당시 "인간의 최고 학문인 도덕학을 배우러 왔노라"고 말한 그는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상준'이라는 법명을 받고 그 자리에서 입선했다.

그 후 모 원로교무는 원기39년부터 원광대에서 23년, 원광보건대에서 17년간 근무하며 원광대학교의 초석을 닦는 데 정성을 다 기울였다. 또 원기61년부터는 원광보건대 교수로 강단에 서며 연구활동과 후진 양성에 일심을 다했다.

김동규 교도는 현재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 조금은 특별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사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 이전에 원광대학교에서 행정조교일을 했고 현재는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자연스레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동시에 대종사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지도하셨는지, 그리고 대종사님의 교육철학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처음 집에서 나와 출가했을 때가 19살, 철이 없었을 때였다. 하루는 제기를 찼더니 대종사께서 이를 보시고 "에끼 이놈 공부를 하러 가야지. 제기를 차냐"며 꾸짖으셨다. 또 한 번은 "너희들 실력을 갖추어라 어물어물 하다간 코 큰 사람한테 법 다 뺏긴다. 수염에 불 붙은 듯이 열심히 공부해 놓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언제나 마음을 놓치지 않고 공부에 힘을 쏟을 것을 강조하셨다.

그렇다고 공부에 관해 엄한 모습만 보여주신 것은 아니다.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선 기간 중 계문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대종사께서 들으시더니 "아따 저놈 잘 한다. 녹음기에 받아 두었다가 다음에 틀어주면 좋겠다"며 칭찬해 주셨다.

우주의 큰 진리를 깨치신 성자의 입장에서 보시면 그 강의가 얼마나 서툴렀겠는가. 그럼에도 대종사께서는 기운을 북돋고 살려내기 위해 그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 그 말씀이 옳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칭찬이 좋은 교육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대안학교라는 특성 때문인지 간혹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을 대할 때는 칭찬만으로 이끌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고는 한다. 어떤 태도로 학생들을 대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상처를 안 주고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원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있다. 일원의 내역을 말하면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면 우주만물이 된다. 그래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부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리란 참 무서운 것이다. 지금 어긋나 있는 아이들이라도 항상 마음을 넣어주고 정을 주면 시일의 장단은 있을지언정 그 마음이 언젠가는 돌아설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들이 자녀들을 볼 때 손가락하고 똑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어떤 놈을 건들든 안 아픈 놈이 없는 것 아닌가? 부모입장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언제나 깊은 정과 좋은 말로 이끌어 주되 혼을 내더라도 이러한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체벌하고 혼을 내는 것은 그때 그때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 사실 강단에 서면 될 수 있으면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전해주고 싶은 것이 선생된 사람으로서의 바람이고 욕심이다. 나름대로 방법을 연구해보지만 가르치는 것이 생각처럼 쉽게 늘지 않는다.

학교 교사라 할지라도 인생에 있어서는 평생 학생일 수밖에 없다. 교사라 해서 배움의 자세를 놓으면 안 된다. 또 교사는 학생들의 좋은 본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배우지 않는 선생 밑에서 스스로 공부하려는 학생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대종사께서는 〈정전〉의 사요 중 지자본위를 보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배울 것을 구할 때에는 오직 구하는 사람의 목적만 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학자라는 것은 배우는 것을 남보다 더 배워야 한다. 배울 때는 남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비록 선생과 제자의 관계이지만 학생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그 배움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강의하는 사람보다 학생들이 더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편 잡는 자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다. 또 학생들이 모르니까 가르친다는 것보다도 내가 아는 것을 시험하기 위해 학생들이 와서 듣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준비를 많이 하게 되고 이것이 진급의 길을 걷는 것이다.

- 교사로서의 고민 이외 또 다른 고민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사실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 그른 길인지 헷갈릴 때가 많고 어디에 목표를 두고 삶을 살아가느냐도 고민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과 함께 참 나를 찾고 싶은 서원들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갈팡질팡 하곤 한다.

원불교 교리는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고, 그 진리는 곧 인과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결국 우리가 지은 대로 받게 되어 있다. 자신이 짓고 받는 것이므로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다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업을 쌓고 어떤 결과를 받게 될지를 내다본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눈앞의 일에만 얽매여 살기 때문에 이런 인과의 이치를 멀리 보지 못한다. 한 두 걸음 앞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

- 개인적으로 충고 해주고 싶은 삶의 자세나 지혜가 있다면 무엇인가?

사람이 입이 하나고, 귀와 눈이 두 개 인 것은 그 만큼 말을 아끼고 보고, 듣는 것을 많이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문에도 말에 관한 계문이 6개나 나온다. 그만큼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 이름 내기를 좋아하지 말아라. 이름 내고 명예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면 공부를 하지 못한다. 말을 앞세우고 명예를 드러내기 보다는 언제나 실천을 앞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천으로 과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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