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인천 교도
     모현교당
내가 종교생활을 하는 이유를 부연하자면 기복(祈福)의 단계를 초월하여 열반의 경지에 들고자 함이다. 열반이라면 흔히 입적(入寂)을 생각하는데 종내는 거기에 들겠지만 우선은 기반(羈絆)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열반에 들고 싶다. 온갖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 나와 더불어 진리를 쫓아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그러한 열반 말이다. 원불교는 개교 당시부터 근본주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다음과 같이 근본주의의 강령에 해당될만한 사항들을 철저히 경계하고 불식했다.

근본주의는 원래 기독교에서 일어난 기독교인들의 분파적인 사조(思潮)요 운동인데 기독교도도 아니면서 왜 사서 근본주의 걱정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근본주의는 꼭 기독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 종교에도 있다.

성서(경전) 무오류론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첫째 신앙 강령인데 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문자를 앞세우지 않으며,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이 진리를 설하는 경전이라고 믿는다. 기독교의 문자주의와는 궤(軌)를 달리한다.

원불교에도 그러한 성서(경전) 무오류론 같은 것은 없을 뿐더러 원불교 경전인 〈대종경〉 부촉품 16장에서 애시 당초 그러한 생각을 갖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법문을 분명히 밝혀 놓았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법 가운데 일원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 강령인 삼학 팔조와 사은 등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다시 변경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세목이나 제도는 그 시대와 그 국가에 적당하도록 혹 변경할 수도 있나니라."

기독교근본주의의 다음 강령은 교주의 신비설, 성체설(聖體說), 사후부활로 생사왕래를 자유로이 하는 초인간설인데 원불교에는 그런 신비설, 성체설, 초인간설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진리적 사실만 존재하는 신앙임을 밝히고 있다.

원불교경전인 〈대종경〉 성리품 29장 법문말씀으로 원불교의 연원인 부처님관(佛陀如來觀)을 설하고 있는데 여기에 인용한다. 대종사 조실에 계시더니, 때마침 시찰단 일행이 와서 인사하고 여쭙기를 "귀교의 부처님은 어디에 봉안하였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집 부처님은 방금 밖에 나가 있으니 보시려거든 잠깐 기다리라" 일행이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여 의아하게 여기더니, 조금 후 점심때가 되매 산업부원 일동이 농구를 메고 들에서 돌아오거늘 대종사 그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다 우리 집 부처니라" 그 사람들이 더욱 그 뜻을 알지 못하니라.

기독교 근본주의의 마지막 강령은 예수의 이적(異蹟)을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으라 했는데 원불교에서는 경전의 〈대종경〉 서품 14장과, 수행품 42장의 법문말씀으로 이적과는 소원(疏遠)하라는 법문을 펴고 있다. 그 요점을 여기에 인용한다.

서품 14장 "- 전략 원기 사년 팔월 이십일일에 생사를 초월한 구인 단원의 지극한 정성이 드디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으로 나타남을 보고, - 후략"는 분명 이적이었는데도 이 이적을 보존하거나 그 가치를 강조하거나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수행품 42장에서 "- 전략 한 때 허령으로 혹 무슨 이적(異蹟)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해롭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신통은 말변(末邊)의 일이라'하였고, '도덕의 근거가 없이 나타나는 신통은 다못 일종의 마술(魔術)이라'고 하였나니라. - 후략"

원불교는 과거에 이미 있었던 그러한 근본주의가 아니고, 진리와 사실적 신앙을 근본으로 하는 조화로운 새 근본주의를 세워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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