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되고 달이 되어

▲ 황상운 그림

총독부 경무국장이 박중빈에게 직접 묻는다.

"불법연구회가 도대체 무슨 단체요?"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목표로 삼고, 사은을 믿고 있습니다."

"일원상이라? 그리고, 사은은 뭐요?"

"그렇습니다.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을 말합니다."

"무시노 알 수 없소. 설명하시오."

"천지은은 하늘과 땅이 있어야 만물이 살아갈 수 있기에 그 큰 은혜 를 말함이요. 부모은은 부모님이 날 낳으시고 기르시니 그 은혜가 가이없음이요. 동포은은 동포가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 서로 맡은바 일을 이루는 것이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은혜롭다는 것입니다. 또한 법률은은 이 세상에는 도덕윤리 규범이 있는지라 서로 진리를 잘 지키는 것이외다."

"아니? 그런데 거기엔 대 일본이노 제국 천황폐하의 은혜는 빠져있지 않소?"

경무국장에게 박중빈의 말을 통역하던 황 순사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이쿠 이자들에게 불법연구회가 당하고 마는구나'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콩당콩당 뛴다.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황은이 되고 불제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부 불은입니다. 그래서 황은이나 불은은 사은과 같이 개별적인 은혜로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황은이나 불은은 사은 보다 더 높고 크기 때문입니다."

"하이! 국장이노, 불법연구회 박 총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

무엇인가 꼬투리를 잡기위해 불법연구회를 방문했으나 수행한 종교 담당관이 박중빈의 사은에 대한 지혜와 슬기가 넘친 답변을 듣고 불법연구회를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해와 달과 같은 종교로 인정한 것이다.
박중빈을 둘러싸고 있던 황 순사와 제자들이 안도의 한 숨을 쉰다.

원기25년부터 박중빈은 교리에 능숙한 제자들을 시켜 교서들을 수정 보완하고 2년 뒤 한 권의 교전으로 완성하고 큰 사업을 일으킨다.

그러나 일제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므로 좌절되고 만다.

정세가 험악해지자 박중빈은 원기27년 10월 각 지역 순방길에 오른다. 추운 겨울 부산에 이르렀다.

"아니, 어쩐 일이십니까?"

"어떻게 사는지 보러왔지."

"스승님께서 소식도 없이 갑자기 오시다니요?"

"예고없이 와야 평소에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모든 일을 평소에 빈틈 없이 준비해 놓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박중빈은 순방하는 교당마다 제자들에게 굳게 뭉쳐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를 당부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고 자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내가 멀리 수양의 길을 떠나려 한다. 내가 떠나고 없더라도 약해지지 않도록 하라. 내가 떠나기로 하면 헌신짝 버리기보다 더 쉽고 썩은 새끼줄 끊기보다 더 쉽게 아무런 마음 두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릴 것이다."

박중빈 부산 제자들을 하나 하나 챙겨주며 다음 순방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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