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가 사람이다"

동산 이병은 종사는 17세에 출가해 한창 일할 나이인 56세까지 교단에 대한 뜨겁고 순일한 열정으로 한바탕 바람을 일으키며 39년간 공도생활에 헌신했다.
1979년 4월, 동산은 답십리교당에 한 청년회원의 결혼식 주례를 보기 위해 상경했다. 이날 밤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설사와 출혈을 심하게 했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장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동산이 장이 좋지 않은 것은 신도안 부임 초기부터 있었던 증세였다. 원래 대식가인데 조밥, 콩밥, 서숙 죽으로 끼니를 연명하여 섭생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식후마다 바로 변소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를 20년 가까이 방치해 둔 것이 악화된 것이다.

말기에는 고통이 극심했다. "내가 웃으니까 안 아픈 것 같지. 사실은 바늘 몇 십개가 가슴 양쪽에서 한꺼번에 찌르는 것 같다." 측근에게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동산은 임원들에게 무엇이든 주길 잘했다. 쓰다가 만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주었다. 새 양복이 한 벌 생겼는데 한 번 입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덩치가 비슷한 임원에게 주었다. 잠옷, 내복, 셔츠, 양말, 수건 무엇이든 얻어 쓰지 않은 임원이 없었다.

한 임원에게 만년필과 손지갑을 주며 "이거 너 쓰거라, 나 또 하나 있다"하며 다른 물건을 보여줬다.
사가 식구들이 와서 잠깐이라도 간호를 하려하면 "나는 공가사람인데 사가에서 간호하는 것 싫다. 사가에 그렇게 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어찌하겠느냐"하시며 절대 받아주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전무출신 요양대책을 걱정했다.

1980년 8월8일. 무더운 한낮의 햇살이 차츰 식어가고 있었다. 이제 동산은 더 이상 고통도 없이 편안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본 후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열반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은 밝고 한결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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