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은인 말년에 만난 것이지"

▲ 구순에 언약식을 한 김갑종·엄순조 어르신.
노년에 싹 튼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도 90세에 말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저 사람과 언약식을 올리기 까지는 보살펴 줘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보살피는 마음이 점점 커지다 보니 오늘날 이렇게 같이 살게 됐지. 저이가 병원에서 날 보더니 옷소매를 붙들고 '나 좀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어. 그때 책임감을 느끼게 됐지." 즉 상대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다 보니 사랑이 싹 트고 의지처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21일 전주요양원을 방문했다. 92세에 어울리지 않게 건강한 김갑경 할아버지. 3년 전 그와 언약식을 올린 이는 엄순조(80) 할머니. 수줍은 미소로 김 할아버지를 따르며 사진 찍기를 허락했다. 두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함을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삶의 은인을 말년에 만난 것이제. 지금 서로에게 좋은 인연으로 살고 있으니 어떤 인연이었기에 그럴까?" 궁금함을 감추지 못한 두 어르신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며 서로를 쳐다본다.

벌써 죽었을 목숨인데…

6년째 전주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날마다 운동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것도 엄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산책길을 나선다. 그럴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인사를 건넨다. "손잡고 운동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거나 "다정하게 오래오래 건강하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그렇게 김 할아버지와 엄 할머니는 산책하며 세월을 보낸다.

엄 할머니는 우울증이 심했다. 게다가 당뇨와 관절염으로 걸음도 온전치 못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직원들 모르게 요양원 인근의 저수지로 가곤 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직원들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김 할아버지에게 엄 할머니 말벗을 부탁했다. 산책길에 동행해 보기도 했다. 관절염으로 잘 걷지 못하는 엄 할머니는 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3개월간 택시를 타고 원광대한방병원에서 침 치료를 했다. 그것도 특진으로. 이렇듯 엄 할머니가 걷게 되기까지는 김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함께 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 할아버지는 엄 할머니에게 늘 당부했던 말이 있다. "즐겁게 살자. 마음을 편안하게 갖자." 남은 인생 원망, 미움, 욕심, 섭섭함도 다 놓고 살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김 할아버지는 엄 할머니 곁에서 심신치료를 도운 것이다. 다행히 점점 엄 할머니는 호전이 되어 걷기까지 했다. 엄 할머니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당신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다. 너무 감사하다." 엄 할머니 자녀들도 김 할아버지에게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고맙고 감사함을 표시한다.

요즘 두 어르신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 설날이 가까워오니 자녀들 만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찾아오겠거니 기대도 안했어. 다들 어렵게 살고 있고 지들 앞 가림하기가 더 바쁘니께. 요즘 세상이 그렇게 만들잖어. 혼자 벌어서는 못 살지."

노년을 함께 할 수 있는 반려자를 새롭게 만나는 일. 어색할 지도 모르지만 노년을 마무리하는데 많은 부분 도움을 주고 있음을 두 어르신이 증명하고 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운동을 하다가 사람들은 김 할아버지의 나이를 묻는다. 그는 서슴치 않고 "난 3·1운동을 한 사람이여"하고 대답한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건강 비결을 묻는다.

그는 "선천적으로 건강하게 타고난 사람이 있기도 하다"며 자신의 건강관리 비결을 꺼내 놓았다. 그가 내 놓은 비법은 술, 담배 안하기,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할 것, 정시 정량을 먹을 것, 짜증이나 화 내지 말 것, 주어진 상황에 늘 만족하고 감사하기, 마음을 편안하게 갖기, 비교하는 마음과 불만을 갖지 않기, 언짢은 일 생각하지 않기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지키며 살아가면서도 철칙으로 삼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원칙이다.

"건강한 사람도 며칠만 누워 있으면 병자가 돼. 없는 병도 찾아오게 되지. 그러니 육신을 자꾸 움직여야해. 병 있는 사람도 운동을 통해 회복을 시켜 줘야 해.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몸 내가 관리하는 것이 제일이지."

그는 '9988234'가 소망이다.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이나 삼일 아프다가 죽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좌선을 쉬지 않는 그는 요즘 교전봉독을 쉬지 않으며 죽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준비

김 할아버지는 건강하지만 노인이기에 늘 죽음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하고 있다. "노인들은 내리막길 인생이여. 이렇게 살다가도 어느 날 어느 순간에 고꾸라 질 지 모른다. 그러니 관리를 해 주는 수밖에…"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해진 일이니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을 생각하며 죽음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꺼냈다.

"젊어서는 돈에 집착하지만 늙어서는 공덕을 베풀 줄 알아야지. 욕심만 가득 채우다 죽으면 그게 뭔 소용이여. 몸으로 못하면 마음으로 하고, 행동으로 해서 남은 세상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는 사람이 죽은 뒤에는 평가하는 말이 있다며 "'아까운 사람 죽었네'하는 것과 '저 사람 잘 죽었네'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정을 베풀며 살다 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요즘 기도한다. "내가 가진 것이 없으니 물질을 마음대로 베풀지 못한 만큼 마음과 정신으로 아낌없이 베푸는 삶을 살다 가게 해 주소서." 윤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부처님이 너무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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