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지는 연유

'천도(遷度)'란 괴로움에서 즐거움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죄에서 복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이는 일상 삶에서도 늘 가능하기 때문에 천도에는 생사가 따로 없는 것이다.

다만 중생은 자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드시 타력을 빌려야 하는데, 아무리 법력 높은 분의 힘을 빌린다 한들 스스로 갖춘 힘에 비할까.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데 건강하고 평소에 단련한 힘도 충분한 사람은 언제든 혼자 힘으로 거뜬하게 오를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한 사람은 지팡이나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여야만 겨우 오르게 되는 것과 같다.

교도중에 아직 자력이 부족한 상태로 뜻밖의 죽음을 맞이하여 타력의 도움이 절실할 때가 있는데, 막상 가족들은 그 중요함과 절박함을 알지 못하고 천도 행사를 생략하거나 정성이 없이 임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자력만 충분하다면 아무리 어려운 경계나 예고없는 죽음에도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생전에 자신 천도를 마치려면 어찌해야 할까? 앞에서도 밝혀주셨듯이 곧 '마음을 조촐하고 밝고 바르게 길들이는 공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렇듯 삼대력을 갖추어 '육식(六識)이 육진(六塵) 가운데 출입하되 물들고 섞이지 아니할' 수준이 되면, 자신 천도를 끝마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천도하는 큰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고 하셨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이나 유가의 '화이불류(和而不流)'나 선가의 '화광동진(和光同塵)'도 위와 같은 경지를 이름이요, 예수께서는 '왼손이 주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고 우리의 <정전>에는 '동(動)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靜)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다'고 하셨으니, 모두 여래행의 경지를 표현한 말씀이다.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삼대력을 기르는 공부법이다. 대산종사께서는 이 공부법을 얼마만큼 자각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원불교 공부인의 근기가 드러난다고 하시고, 우리 회상은 이 상시응용 6조를 표준으로 하여 법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한다.

고슴도치가 둥글면 가시에 여러 잡다한 것이 묻어 덩치가 더욱 커지듯이, 중생이 일생 살고가면 업 덩어리가 더욱 커져서 자유를 잃고 그 무게에 끌려 다닌다. 영생을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며 고통 속에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헤아릴 수 없는 생명 중 각혼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서 주세불 일원회상을 만났으니, 부지런히 공부하여 생사자유의 큰 힘을 얻고 대종사님 제생의세 사업에 대합력하자.

<영산성지고등학교>

※ 다음주 부터 장원경 교무가 〈대종경〉 수행품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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