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만 교도ㆍ서성로교당
'이 법 참 좋다 좋아' 필자가 처음 원불교에 입교했을 때 충주교당 김심원 원로 교도가 내 손을 꼭 잡고 했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필자가 원불교를 만난 것은 원기65년 선친이 교통사고로 열반한 뒤 크게 상심하고 있을 때 직장 상사인 현 충주교당 이정오 교도회장의 권유로 아버지의 천도재를 지낸 것이 인연이 되었다.

아버지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당시 충주교당 김성주 교무와 이 교도회장의 권유로 입교까지 하게 되었다. 입교한 후 '이 법 참 좋다 좋아' 하시는데 하나도 좋은 줄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맛을 알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때는 법도 모르고 그냥 노인네가 만날 때 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시니 저 양반 노망이 나도 많이 나셨는가보다 생각 했고, 원불교에 입교 시켜준 직장 상사의 입장도 있고 해서 계속 법회를 잘 다녔다. 이렇게 시작한 교당생활이 강산이 세 번 변한 지금까지 원불교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새 교도가 교당에 오면 '이 법 참 좋다 좋아'라고 말하면서 내가 당신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선진님께서 귀가 따갑도록 설교를 들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 이 법이 얼마나 좋은지 재차 강조하는 나를 볼 때, 어느덧 연륜 있는 교도가 된 듯 하다.

한 번은 총부에서 당시 대산종법사를 배알한 일이 있다. 그때 대산종법사께서 교도들에게 '자신의 아내들이 부처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야단법석에 참석한 대중들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 대산종법사께서 상당히 위트와 재치가 있어서 대중에게 농을 친 것으로 알았다. 대산종법사께서 법력만큼 농담도 잘 하는 구나 생각했다. 당시 내 생각에는 '마누라가 마누라지 무슨 부처냐.' 그런데 그 법문이 늘 화두처럼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처와 중생은 한 마음의 차이다. 교법에 대한 신심과 공심, 공부심이 조금씩 싹이 트면서 나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감사생활을 통해 은혜를 발견하고 원망심을 돌려 사은님께 감사하는 일상의 변화는 신앙생활이 준 혜택이었다.

교당에 맥을 대고 계속 다니다 보니 교화단장도 하라고 하고, 청운회나 교단행사 등에 참석하는 등 교당일에 집중했다. 특별히 뭘 알고 다닌 것도 아니지만 그냥 다니는 것이 좋아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원불교 청운회라는 조직을 만나게 되었다. 대구·경북교구의 청운회 회장이 정기훈련 및 이사회에도 참석하게 해 청운회를 배우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런 작은 활동들이 계기가 되어 부족한 내가 대구·경북 청운회장을 맡아 원불교100년성업대정진기도를 열심히 했다. 개인적으로 기도의 은혜를 받았는지 아이들 세 명을 5개월 만에 결혼을 시키는 경사도 맞았다.

최근 총부에서 열린 청운회 이사회에서 경산종법사는 '문자 없는 경전을 읽으라'라고 화두를 하나 내려주었다. 그 화두를 수개월 동안 굴려도 여여자연한 이 경전을 볼 줄만 알았지 읽혀지지 않는다. 어둡고 답답한 마음에 교무께 질문을 하였더니 '실천하라' 한다. 알고 보면 쉬운 것인데 이일을 어찌할 꼬! 점점 어려워서 감내하기 힘들지만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기에 작은 일부터 하나 하나 실천하며 문자없는 경전을 증득하고 싶다.

원불교10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이때에 중요한 것은 자신성업봉찬과 교화대불공의 실천이다. 이 성업기도를 통해 자신이 마음의 힘을 얻어야 하고 함축된 에너지로 대사회 교화대불공을 이끌어야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원불교100년을 맞이해 회상에 보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실천할 때가 지금이다. 자신이 회상에 보은할 일을 찾고, 가정에서 협력할 수 있는 것,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 등을 한가지 씩 찾아 원불교100년을 준비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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