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 여의도교당 이태언·박인관 부부 교도
봉공현장 누비는 살림꾼과 해결사
교무 중매 인연으로 오롯한 일원가정
서울역 노숙인 저녁공양 설거지 5년
2015-12-09 민소연 기자
"처음에는 교당에서 순번 돌아오면 했는데, 배식까지는 봉사자들이 있어도 설거지는 늘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냥 두고 못 가겠어서 '여보, 우리 설거지 하고 가자'고 했죠."
봉공현장이든 교당이든 살림꾼으로 역할하는 이태언 교도의 말에 남편 박인관 교도는 흔쾌히 팔을 걷어부쳤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지만, 원불교 일이라면 늘 아내를 더 돕지 못해 안달인 그라서 당연했다. 차마 그냥 가지 못해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5년, 이제는 찰떡궁합에 호흡척척으로 산처럼 쌓인 설거지도 뚝딱이다.
"3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부터 골반까지 골절됐었어요. 세달 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마침 제가 퇴직한 해라 늘 병상을 지켰죠. 수요일 오후부터 저녁까지만 아들더러 와있으라고 하고 혼자 배식과 설거지를 했습니다."
결국 이태언 교도마저 몇 달만에 현장으로 복귀, 배식과 설거지를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 힘들 것도 따로 마음 낼 것도 없다"고 입모아 말하는 공심과 정성에, 올해도 작년에 이어 서울봉공회 자원봉사자축제에서 부부봉공인상을 수상했다.
"아내는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봉공이나 교당 일에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죠. 예전에는 교당들이 목욕, 복지관, 김장 등 봉사활동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 업고 메고도 가고, 좀 크면 두고도 갔어요."
어떤 교무라도 탐내고 어떤 교도라도 의지하고 따르고 싶은 이 일원가족은 시작부터도 그랬다. 원기74년 대마교당 출신의 이 교도와 형 박인호 교도(서울교당)를 따라 나오기 시작한 박 교도를 맺어준 건 당시 여의도교당 이효원 교무로, 만난 지 반년도 안 되어 서울회관 한강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알고 보니 제가 자주 갔던 거래처 건물에 남편 회사가 있었더라고요. 아마 몇 번은 옷깃이 스쳤겠다 싶었죠. 게다가 신혼살림을 했던 집이 영광빌라, 그 집을 구한 부동산도 영광부동산인 거죠." 별 것 아닌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신기하고 기쁜 인연이었다. 매사가 감사거리였던 신혼 초, 안양에서 교당까지 오가는 동안 아들 성관·대종도 세상에 나왔다.
"둘째 100일 딱 지나고 아내가 교당에 가는데, 당시 저는 회사 일로 일요일에도 종종 근무했거든요. 그럴 때도 씩씩하게 작은애 업고, 잘 걷지도 못하는 첫째 손잡고 버스 두 번 갈아타며 교당에 가는 거예요."
교당에서 방석 두 장을 앞과 옆에 깔아 형제를 눕히면, 대견하게도 울거나 보채지 않고 법회를 같이 봤다. 이듬해에는 승용차를 샀는데, 어찌나 교당을 많이 오갔는지, 조수석에 앉혔던 작은 아이 얼굴이 늘 시골아이 마냥 까맸단다.
무아봉공도 부창부수, 아내가 살림꾼이었다면 남편 박 교도는 해결사다. 시스템관리 및 설비 분야의 특성을 살려, 교당에서 뭐가 고장나기만 하면 박 교도가 나타나 말끔하게 손보곤 했다. 퇴직 후 형과 회사 디씨텍을 창업한 뒤에도 해결사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식당이 따로 없는 여의도교당은 법당에서 접시로 점심공양을 하는데, 의자에 붙은 난간이 좁아 늘 불편함을 겪었더랬다. 그걸 보고 그 많은 난간들에 일일이 나무판을 붙여 모두가 편해진 것도 박 교도의 작품이다.
"수요일엔 밥차 봉사, 금요일엔 너섬합창단 공양준비, 일요일엔 법회, 그리고 그 외에도 하루는 교당이나 서울회관에 나오게 되더라고요. 일주일이면 나흘 정도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함께 하죠."
결혼 27년째인데도 늘 붙어다녀 더 좋다는 이 부부. 일요일 오후 결석 교도들에게 예회보 보내는 일도 15년 넘게 해왔다. 그러다보니 늦게까지 남아있기 일쑤, 아예 김덕수 교무가 저녁을 사주는 일도 자주 있단다. 1층 카페를 운영하는 교도가 "언니랑 형부 내려오면 다 내려온 거다"고 말할 정도.
"그러고보니 남편과 특별히 싸운 일이 없었네요. 혼자 무슨 일을 생각하거나 행동 할 때 아무런 걸림이 없을 정도로 남편이 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줬으니까요."
"아내와 같이 다니니 오해하거나 다시 설명 할 일이 없어서 편하고 행복합니다. 교당에 뭐가 필요하더라, 뭘 좀 바꾸면 좋겠다 하는 점들도 서로 알려주고 실천하니 더 좋고요."
노숙인 밥차면 밥차, 교당이면 교당, 신앙이면 신앙, 어디 하나 빠진 데 없이 알뜰한 이 부부. 원기80년대 초반, 심익순 교무 앞에서 "주인으로 주인답게 살겠다"고 한 그 약속이 늘 마음 깊이 남아있는 그들이다. "말빚 갚으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더 해야 한다"며 서로 끌고 당기는 이들에게서 몇 겁의 지중한 부부의 연이자 신앙으로 다시 만난 법정의 깊이가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