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숙 교수

[원불교신문=강지숙 교수] 2013년부터 이듬해까지 임신중절 시술을 69차례 했다가 기소된 한 산부인과 의사가 2017년 2월 헌번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이 헌법소원은 2019년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는 100년을 훌쩍 넘은 시점에 폐지되게 됐다. 


낙태가 죄가 된 시점
우리나라에서 낙태(落胎)가 ‘죄’로 다뤄진 것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 형법이 적용되면서부터였다. 즉, 법으로 낙태 행위를 처벌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일본 형법을 조선에 적용해 1910년 만들어진 ‘조선형사령’를 근거로 낙태한 여성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을, 낙태를 시술한 의사·산파·약제사 등에게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독자적 법체계를 갖추며 낙태죄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지만 낙태는 엄연히 ‘죄’로 규정되어 낙태죄 조항을 포함했다. 

이후 1973년 제정된 ‘모자모건법’은 일본의 ‘우생법(優生法)’을 참고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인구정책과 맞물려 운영되면서 1970년대 산아제한 정책의 추진으로 낙태는 암묵적으로 비범죄화 됐다가 이후 대법원이 ‘의사의 낙태 시술이 사회 상규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판결해 낙태죄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실제 한 해 낙태 건수가 17~18만 건에 이르지만 이를 처벌한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고 처벌수위 또한 낮았다. 이렇듯 사문화돼가던 낙태죄에 대한 처벌은 근본적으로 낙태와 맞닥뜨린 사회적 상황이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특히 당사자인 여성에 대한 배려없이 낙태를 시행한 의사처벌에 국한돼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원불교 교도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66년 만에 낙태죄 위헌으로 판결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란 해당법률이 사실상 위헌이나,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이는 1953년 낙태죄가 규정된 지 66년 만에 나온 위헌 판결이고 헌재가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 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할 뿐 아니라 이에 더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고통까지도 겪을 것을 강제당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부당하게 제한해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판단했다. 이것은 의료행위인 ‘낙태’라는 행위에 대한 법률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낙태를 행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인 낙태죄가 입헌국가의 최상위 법률체계인 헌법에 위배된다는 뜻이다. 헌재가 제시했듯이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Pro-Life)과 여성의 자기결정권(Pro-Choice)이 충돌하는 상황이 된다. 


태아는 독립적인 생명체인가
태아는 여성의 태중에 있는 분화의 연속성을 가진 생명으로 여성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으며 생명을 유지하거나 중단할 권한이 스스로에게 없다. 일정한 시일이 지나야 독립적인 개체로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태아는 여성과 한 몸인가? 각기 다른 두 몸인가? 만약 ‘여성과 한 몸이었다가 일정 시일 이후 두 몸이 된다’ 하면 그 일정 시일은 언제부터라고 해야 맞는 것인가? 헌재는 일정 시일을 산부인과 학계 견해를 빌어 태아가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라 제시했고, 모자보건법에 의하면 임신 24주까지의 낙태는 합법적이었다. 현재 OECD 가입국가 36개국 중 31개국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임신 12주에서 임신 24주까지 낙태가능 기간과 절차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낙태허용은 태아의 독자생존의 시점을 근간하고 모체 건강의 해를 최소화하는 시점을 낙태의 최종 허용시점으로 결정하는게 적절할 것이나 이 시기에 대한 결정은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태아 또한 어느 시점에서건 생명체라는 견해와 태아는 그 생명유지가 타인에 의해 결정이 되는 취약한 존재라는 점, 기존의 삶과 죽음이 인간을 초월한 그 무엇에 의해 좌우되어야 한다 믿었던 신념과 위배되어 인간에 의해 삶과 죽음이 도구화되고 더 나아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음에 종교계는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낙태에서 태아뿐 아니라 자신의 몸속에서 키워내는 여성의 존재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면에서 헌재는 태아의 발달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에 대한 쟁점을 다뤘다. 이에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여성에게 주어진 다양한 특수상황들이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태아 생명권 침해란 절대적 신념에 의한 단편적인 판단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오히려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생산권 및 산모의 건강권
여성단체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프레임보다는 재생산권 보장의 관점에서 임신중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제적 재생산이 아닌, 재생산권은 성적자기결정권 및 출산의 선택권을 포함하고 그 결정에 있어서 성평등권리까지 포함해야 한다 하면서 헌재의 헌법불합치결정을 환영했다. 보건학적 측면에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낙태: 보건시스템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 및 정책지침』에서 여성낙태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이 낙태율을 줄이고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음을 강조했고 여성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는 낙태죄에 대한 처벌규정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함을 제시해 헌재의 결정과 맥락을 같이한다. 의료계에서는 부득이하게 행해지는 낙태라 할지라도 이러한 의료적 시술 자체를 살인행위로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 산모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으며 현실을 반영한 판결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원불교 교리로 바라본 낙태
‘낙태’에 대한 원불교 교리적 관점을 생각해 보자. 원불교에서 ‘살생을 하지말라’는 보편적 원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소태산은 부득이 살생해야 하는 경우, 그럴 수도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사유에 대해 ‘연고(緣故)’조항을 뒀다. 즉 산모가 임신을 유지함으로써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연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인과보응의 원리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과 악의 짓는 바에 따라 진급·강급과 상생·상극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 그 원리인지라 낙태상황에서 낙태를 시술하는 의료진과 낙태를 하는 어머니, 낙태를 당하는 태아가 모두 공동의 업을 지어 그에 따른 인과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낙태로 인해 받는 가장 큰 인과보응은 낙태를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변화의 차원에서 인과를 살펴보자.

행복과 고통은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이 되고, 생각과 가치관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즉, 변화무쌍한 마음 상태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고는 피하고 낙을 취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고와 낙을 분리하는 분별심에 지배를 받기에 고와 낙의 본질을 아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 고와 낙을 인식하는 주체인 나(我)가 나를 우위에 놓는 분별로 대상을 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폭력과 침해를 일삼을 수 있다. 이는 자기성찰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고통의 해결방안을 외부요인에서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고, 이는 결국, 자신에게 이익보다는 해로움으로 오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아기를 가진 여성이 ‘이 아이가 태어나면 내 인생에 어떠한 행복과 불행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 아이와 내가 분리됐다는 개념에서 나온 생명 관념이다. 나라는 자아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와 동떨어진 자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관념을 넘어설 때 우리는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들을 우리 안에서 얻을 수 있게 된다. 만물을 존중하는 우리 교리상 태아의 생명권을 충분히 존중하기에 원불교 교도로서 낙태죄 헌법불합치에 대한 개인적 입장은 한편으로 유감이나, 부득이 낙태가 시행될 상황에서는 인과보응의 원리에 비춰 충분한 자기성찰이 우선시 돼야 할 것이다.
 

강지숙(법명 지은) 교수

-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 교수
- 원불교생명윤리연구회원
- 어양교당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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