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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우울하고 당겨올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하다. 지혜로운 수행자만이 영원한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다. 지나간 날에 발목이 잡혀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속아서 현재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상의 시간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익숙한 대상이나 상황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잣대로 판단,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대종사는 “이것은 마치 새 옷을 입은 사람이 처음에는 그 옷을 조심하여
슬기로운 명상생활
박대성 교무
2021.12.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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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단, 오분이라도 방석에 앉는 것이 바로 좌선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관문이 된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 지속적이고 끈질긴 적공을 놓치게 된다면 마음의 자유를 얻을 기약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예비교무 시절 한창 참선에 재미가 나서 방학 때도 선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진을 하는데 한나절이 지나니까 가부좌를 틀은 다리가 어찌나 아픈지 끊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이를 악물며 참고 있는데 나중에는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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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2.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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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그 선택에는 많은 가치관과 판단이 담겨있다. 이 가치 판단들은 하나의 습관과 에너지로 변화해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수히 많은 판단(망상)을 거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것은 ‘나’에게 좋은 것, 어떤 것은 ‘나’에게 나쁜 것, 이와 같이 기계적으로 끊임없이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명상 공부의 첫발을 잘 내딛는 것이다.나(我相, Ego)라는 판단의 색이 칠해진 안경을 벗고 객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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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2.0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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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옛 사람들은 명상의 깊이가 무르익으면 생사(生死)를 내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이것을 내 몸을 가지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우주를 살 수 있을 만큼의 금은보화가 주어진다고 물질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끝을 모르고 치솟는 자신의 탐욕과 만날 가능성만 더 커질 뿐이다. 육신을 유지하는 생명의 수량이 늘어난다고 생사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생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죽음의 공포는 시시각각 우리를 덮칠 것이다.생사의 자유를 얻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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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2.0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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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선을 오래 수행하다 보면 극락이나 천국과 같은 종교적인 초월의 세계가 특정한 공간에 건설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의 희로애락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그쳐 있으면 그 자리가 곧 극락(『대종경』변의품 10장)”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절반의 기쁨과 절반의 고통으로 이뤄져 있다. 적당한 고와 낙으로 마음공부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명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 맛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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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1.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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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업은 본래 무명인지라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진다”고 소태산 대종사는 ‘참회문’에 밝혔다. 우리는 선을 통해 나타나는 지혜의 빛으로 각자의 삶을 속박하는 다양한 부정적인 정서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부정적인 요소를 하나하나 찾아서 일일이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가 밝아질 경우 무지(無知)는 단박에 제거된다. 그것은 밝은 불빛을 켜는 순간 싸우지 않아도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 뒤, 지혜의 빛이 무명을 완전히 몰아내고 몸과 마음이 참다운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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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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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슬픔과 고통에는 공감하기 쉬우나, 이익과 성공에 함께 기뻐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내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는 선·명상을 통해 밝은 긍정성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은 곰팡이를 없앨 때 독한 소독제를 뿌려 닦는 것보다 밝은 햇볕에 내놓아 바람을 쐬면 자연히 해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인간의 도덕성 발달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에 따르면 ‘인습 이전 수준(Pre-Conventional Level)’의 인간은 ‘벌과 복종의 단계’와 ‘도구적 목적과 교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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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1.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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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어린 시절에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성인이 된 뒤에 다시 가져다준다면 누구도 그때와 같은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禪) 명상을 통해 마음의 크기가 확충된다면 예전에 자신이 소유하려고 고집하고 집착했던 것들이 이제는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때 ‘나’라고 생각했던 그 경계가 더 이상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세상의 본질은 모두가 텅 비어서(空) 항상 한 자리에 고정돼 있는 것이 없다. 이런 이치를 터득한다면 ‘나’를 비롯한 그 무엇에도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명상을 지속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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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1.0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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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명상을 하다 보면 수시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들을 접하게 된다. 졸음, 멍함, 간지러움뿐 아니라 신체적 통증, 때때로 일어나는 오만 가지 번뇌 망상과 만나게 되고 흘러가지 않는 시간과 함께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도 대면한다.명상 시간을 방해한다고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외부의 자극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외부에서 주는 자극이 도처에 널려 있다. 필자 역시 좌선을 하려고 앉아 보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시선이 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중간에 전화가 울리기도 하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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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0.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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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어떤 일에 마음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망상이 일의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명상을 통해 생각을 제어할 줄 알게 되면 자연히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채워졌던 두뇌의 기억공간이 깔끔하게 정돈돼 효율이 훨씬 높아진다. 이것은 속도가 느려진 컴퓨터를 깨끗하게 포맷한 뒤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집중과 처리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것이다.2014년 하버드대학의 신경 과학자인 사라 라자르 박사 팀의 연구 결과는 명상과 기억력의 관계를 명확하게 실증하고 있다. 명상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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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10.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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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선을 통해 자신과 대상과 일치된 사람은 병고(病苦)가 닥쳐도 마음이 물러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자연스럽게 강화되므로 묵혀있던 잔병이 사라지는 것은 명상의 부수적 효과 중 하나이다.우리가 처음 명상을 하게 되면 크고 작은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이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몸의 감각이 계발되므로 평상시 외면했거나 억압한 곳에 대한 감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면 저절로 잘못된 습관이 고쳐지므로 막혔던 곳도 뚫리게 된다. 몸이 치유되고 마음이 정화되면 얼굴이 윤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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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9.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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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슬플 때 함께 슬퍼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 나아갈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을 우리는 마음을 중도에 맞게 쓴다고 한다. 또 동(動)해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靜)해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선의 맛이 깊어질수록 대상에 애착과 자신에 대한 아집에서 해방된다. 이 정도가 돼야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의 정서와 감정에 온전히 공감(共感)할 수 있다.이것을 옛사람들은 나의 고집을 버리고 대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사기종인(舍己從人)’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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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9.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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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을 오래 해 그 힘을 얻고 보면 열 가지 공덕(功德)이 있다고 『정전(正典)』, ‘좌선의 공덕’에 밝힌 바가 있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이다. 수행자는 정신을 잃을 만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중심이 잘 잡혀 판단이나 감정이 여기저기로 휩쓸리지 않는다. 이러한 균형 잡힌 상태를 쇠로 된 기둥(鐵柱)의 중심, 돌로 된 외벽(石壁)의 표면과 같다고 비유한다. 명상을 통해 몸의 기운이 정화되고 아랫배 하단전에 집중되면(centering) 마음도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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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9.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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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선을 통한 마음공부의 ‘빠른’ 지름길은 역설적으로 ‘오래오래 계속’ 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깨달음이나 견성(見性)을 체험시켜 준다고 홍보 하면서 비싼 수련비를 받는 일부 수행단체가 더러 있다. 이런 곳에서 수행을 할 경우 심리적으로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종종 신비한 현상을 빨리 느낄 수도 있다. 마음에 기쁨이 차올라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자만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며칠 만에 그 기운이 풀어지거나 극단에 가서는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을 얻는 경우도 있다. 지속적인 치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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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9.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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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선(禪)수련에 정성을 들여 적공(積功)하다 뜻하지 않게 신(神), 조상(祖上)이나 신앙의 대상, 종교적 위인들을 만나거나 극락과 천국 같은 특별한 경계를 보게 되는 등의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명상의 경지가 무르익어 마음이 고요해지면 무의식의 세계 또는 내면의 그림자가 작동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는 내 마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이러한 경계가 실상(實相)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좌복 위에 앉아도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눈앞에서 나타거나 음성으로 들리게 되면 정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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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8.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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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우리는 명상을 통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나의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처리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내 몸이라는 한계를 넘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명상은 오래 앉기나 참는 연습이 아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속지 말고 ‘나’와 그 현상들을 분리해 객관화 시키는 것이 명상의 요체이다. 마치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내가 관객이 돼 거리를 두고 바라보듯이 말이다. 이를 위해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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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8.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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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명상으로 자신의 신체를 한 곳에 고정시켜 놓으면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몸의 감각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게 된다. 마치 컵에 물과 황토를 섞어 흔들었다가 가만히 놓아두면 잠시 후 맑은 물은 위로 모이고 무거운 황토는 아래로 고이는 것과 같다. 몸이 안정되면 마음도 고요해진다. 이런 평온 상태(靜定)에 접어들면 전에 느낄 수 없었던 현상을 몸과 마음이 객관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물은 물대로 황토는 황토대로 서로 분리되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선을 통해 마음공부가 무르익으면 높은 지혜와 깊은 통찰력을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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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교무
2021.08.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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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우리 몸은 구조적으로 한 가지 자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몸을 한 동작으로만 고정해 놓는다면 당연히 관절에 큰 무리가 된다. 따라서 처음 앉아서 명상을 하는 사람은 5분만 앉아 있어도 다리가 저리고 아프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명상 자체가 인간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시작된 부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명상이라고 하면 고요한 산사에서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바위 위에 앉아 삼매에 빠져 있는 선승을 떠올릴 수 있다. 또는
슬기로운 명상생활
박대성 교무
2021.08.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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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명상이 익숙해질 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고요함과 깨어있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룰 때 동시에 수행의 질도 향상된다. 바퀴 하나만 없어도 수레의 구실을 하지 못하듯 명상도 이 두 가지 중 하나에만 편중되면 제구실을 못 하게 된다.수행자는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고 깨어 있는 가운데 고요함을 유지해야 밝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적적(寂寂)’이란 한자는 깜깜한 밤하늘이 별빛 하나 없이 고요한 상태로 비유할 수 있다. 명상이 익숙해지면 일
슬기로운 명상생활
박대성 교무
2021.07.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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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대성 교무] 선으로 무언가 성취를 하려 한다면 이는 참 명상이 아니다. 시장에서 흥정을 하면서도 갖가지로 일어나는 감정의 발생을 즉각 바라보고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선이 된다. 흔히 선가(禪家)에서 “평상심(平常心)이 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평상이 이러한 통찰의 방향으로 향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지 수승화강의 여부나 단전의 형성과 같이 수행을 돕는 보조 수단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필자는 수학 시절 단전 수련을 열심히 하다 하단전에 강한 열감과 더불어 강력한 에너지가 전신을 휘감으며 온몸이 개혈(開穴)되는
슬기로운 명상생활
박대성 교무
2021.07.15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