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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원불교 과천교당의 독서모임은 잘 안착된 시니어 소모임으로 전국에서 손꼽힌다. 2012년 시작돼 올해로 12년째. 양장본 첫 장처럼 늘 든든하고 설레는 월 1회 독서모임을 이끄는 주인, 바로 고청권 교도(과천교당)다.“원래 책을 그리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고 교도.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그는 평생 건설 현장에서 감리를 맡으며 틈틈이 책장을 넘겨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강연 순서가 오자 “스티븐 코비의 으로 습관을 고치고 마음공부에도 큰 도움이 됐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감사생활 캠페인
민소연 기자
2024.04.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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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열아홉 살, 그는 사회 초년생의 첫 발을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뗐다. 그곳에서 만난 교무님들은 그를 막냇동생 대하듯 귀애했고, 박선우 디자이너(교정원 정보전산실, 정토회교당)는 그렇게, 성지에 품어졌다. 그러다 언젠가 동료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고 혼자 있게 된 날이 있었다. “그때 저는 참 소극적이어서 혼자 식당을 못 갔어요.” 이후 이 이야기를 알게된 동료 교무님이 크게 화를 냈다. 끼니를 걸렀다는 게 이유였다. 그의 소심한 성정이 답답해서가 아니라 ‘한 끼’ 식사를 제대로 못 한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4.04.1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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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결혼하기 전까지 원불교의 원(圓)자도 몰랐다”며 수줍은 웃음을 보이는 김도운 교도(운봉교당). 23살에 시집와서 보니, 시누이가 전무출신(김도경 교무)인 원불교 집안이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돌보며 시골 살림을 감당하는 일이, 실로 녹록지 않았다.“눈이 내리면 무릎 위까지 쌓였어요. 180여 평 되는 집 마당 치우고, 시아버님 삼시 세 끼 따듯한 밥 해드리고, 어린 자녀 돌보고, 왕겨로 불 때느라 (요령이 없으니) 눈썹이며 앞머리가 거의 없었어요.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시아버님 빨래도 냇가에
감사생활 캠페인
이여원 기자
2024.04.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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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익산’이라는 지역을 지금에야 제2의 고향처럼 정겹게 느끼지만 시집오면서 처음 만난 이곳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었다. 그래서 한 일이 동네를 돌며 ‘교당’을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다 북일교당을 만났다. 때마침 아랫집에 살던 어른도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어린 새댁을 어른께서 어찌나 반갑게 맞이해주시던지….” 그 덕분에 주명덕 교도(북일교당)는 교당에 정을 ‘착’붙이게 됐다. 그 세월이 벌써 30여 년이다. “캄캄한 암흑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았는데 교당 인연들이 ‘등불’이 돼 준거죠.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4.03.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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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결국, 다시 교화였다.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스물아홉 살이던 아내가 “원불교를 다녀야겠다”고 나서자 말없이 따라왔고, 서른두 살에 덜컥 부회장을 맡아 20여 년을 해냈다. 남편은 한의사, 그는 한방간호사로 따뜻한 의술도 신앙도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쓰러졌다.“쓰러진 지 1년 만에 남편(故 임성일 교도)이 열반하고, 처음으로 교당을 쉬어봤습니다. 이제까지의 공부가 헛공부였나 싶을 만큼, 그제야 원망심이 시작됐어요.”감사생활로 넘어서야 했다. ‘일단은 쓰고 보자’, ‘일단은 기도하자’며 공부에
감사생활 캠페인
민소연 기자
2024.03.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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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30여 년 전, 남편을 따라 처음 갔던 교당은 법인절 준비에 여념 없었다. 마치 명절처럼 다들 웃는 얼굴로 기도하고 법당을 단장했다. 교당에 처음 온 새댁에게 교무님은 목탁을 선물했다. 목탁을 어설프게나마 꼭 쥐고 일원상 서원문과 반야심경을 외웠다.그러던 어느날 거짓말처럼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 하늘이 무너지는듯 망연자실한 채 어린 딸만 부여안고 견뎠다. 그런 그의 집에 교무님이 찾아왔다. 제 발로 교당을 찾아온 새댁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걱정스러웠다는 말과 함께였다. 故 송선만 교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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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아 기자
2024.03.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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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교무님이 저에게 숙제를 주셨으니 해야지요. 처음에는 누구를 입교시켜야 하나 걱정이었지만, 교무님 말씀을 믿고 용기를 냈어요.”지난해 원불교 서울교구 개인부문 최다연원상을 수상한 박여주 교도. 그는 “법강항마위로 승급하려면 입교연원의 의무를 해야 한다”는‘교무님의 숙제’를 성실하게 해냈다. 그가 지난해 입교시킨 연원은 모두 10명. 자신을 돌봐주는 요양사와 아파트 노인정 회장 부부, 막내여동생 부부가 그의 진심을 알아줬다. 막내동서, 조카와 조카며느리, 만만치 않은 시월드 동갑내기 시누이와 시누이 딸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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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원 기자
2024.03.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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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옛말에 “중매를 잘 서면 술을 석 잔 받는다”고 했다. “세 쌍의 중매를 서면 큰 복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나고 자란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한 쌍으로 맺는 일은 중하디 중한 일이라는 의미일 터. 그 중요한 일을 하며 7쌍의 부부를 탄생시킨 오작교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의 “복 중에는 인연 복이 제일이다”는 가르침을 새기고 기꺼이 자신을 다리 삼아 천생의 배필을 이어주는 김경선 교도(가락교당)다.그는 앞서 30여 년간을 상담사로 생활했다. 그러다 정년퇴임을 하면서 매일 해오던 일을 그만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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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아 기자
2024.02.2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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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을 먹고 출근한 남편은 불시에 사고를 당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아침 밥상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하는 후회에 머물기에는 줄줄이 달린 아이가 넷. 전순원 교도(전주혁신교당)는 씩씩하고 굳세게 살아내야만 했다. “그때는 일요일에 일하면 특근수당을 받을 수 있어서 교당 갈 엄두를 못냈어요.” 그렇게 몇 년, 친정어머니가 열반하고 교당에서 49재를 지내게 되면서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교당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전 교도는 그 힘든 삶의 순간에서 단 한번도 원망을 품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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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아 기자
2024.02.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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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그날 아침, 최성원 교도의 얼굴이 유독 어두웠다. 이를 알아챈 정법일 교무가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는 아침에 아내에게 했던 ‘충격요법’을 털어놓았다. 새벽에 시댁 일로 나간 아내가 남편 아침상에 올릴 굴비를 굽기 위해 오븐의 예약기능을 사용했던 게 화근. 기능이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굴비는 새까맣게 타버렸고, 이를 그냥 넘길 최 교도가 아니었다. 아내가 요리를 태운 적이 한 두번 아니라는 생각까지 더해져, 그는 오븐이며 그릇을 모두 엎어놓고 나왔다. 그가 말한 ‘충격요법’의 전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정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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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원 기자
2024.02.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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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1997년, 거짓말처럼 나라가 망했다. IMF경제위기가 온 국민을 집어삼키던 그때 남편이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후부터의 시간은 주식투자 실패, 빚보증 등… 온통 경계 뿐이었다. 당시 진귀은 교도(익산교당)는 인생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교당으로 향했다. “그때 교당에서 ‘세상이 나를 공부하게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가 경계를 무사히 지나게 해준 힘은 바로 ‘동포은’이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운영하게 됐다. “동네 장사잖아요. ‘아이 키우는데 고생하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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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아 기자
2024.01.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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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원불교? 들어는 봤다”고 말하던 남편(김용인 교도)을 교도회장으로까지 키워내고(?), 시부모님, 시동생 둘, 동서 둘, 조카 둘을 모두 입교시킨 이혜명 교도(과천교당). 그래도 자녀교화는 마냥 쉽지 않았다. 4대째 신앙을 잇는 내 자식에게는 “엄마는 다른 소원 없어. 일원가정으로 살아주는 거면 돼”라며 어르고 달랬고 밀고 당겼다. 다행히 아들과 딸(김우성 응급의학과 전문의·김지원 기후변화학자)은 교도로도 잘 자라주었다.허나 며느리는 또 다른 장(場)이었다. 본래 생판 남이었던 며느리 속을 어찌 알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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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연 기자
2024.01.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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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교권이 무너졌다고 했다. 1998년부터 시작한 교육계의 큰 전환점이 된 일명 이해찬 이데올로기, 즉 무시험전형 및 교육개편이 큰 경계를 몰고왔다. 당시 교편을 잡고있던 한수진 강동교당 교도회장은 그야말로 ‘이빨빠진 호랑이’가 된 듯 자존감이 무너졌다. 그때 교당에서 들은 일상 수행의 요법 중 ‘세우고’와 ‘돌린다’가 그의 가슴을 울렸다. ‘그래 고정관념을 돌리면 자존감은 다시 세워질 수 있어!’ 덕분에 한 교도회장은 과거 ‘교사’에만 머물렀던 자신의 모습을 탈피해, 학생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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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아 기자
2024.01.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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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7살, 5살된 자녀들만 그의 곁에 남았다. 그때 김상원 교도(광주교당)의 나이는 시리도록 푸른 28살이었다. 당시 교당에서 남편의 49재를 지내며 원불교를 버팀목 삼았다는 그. “그때부터 어려운 일(경계)이 닥쳐와도 도반들과 의논하고 넘겨냈어요.” 그렇게 법동지들과 ‘서로 못나눠줘서 안달’하며 여러 세월을 살아왔다. 특히 연원인 故 김정근 원로교무와는 엄마와 딸처럼 지내며 살았다. “열반하시기 전 틀니를 해드렸는데 1년도 못지내고 가셔서….” 살아생전 진심을 다 했음에도 더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4.01.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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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1973년 어느 여름의 길 위. 아들을 임신했을 시기라 배는 불렀고 손에는 방문판매로 팔 화장품을 들고 있었다. 원불교의 ‘원’자도 모르던 그는 길 위에서 우연히 검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쪽 진 사람을 처음 만났다.“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법문을 즐겨 말해주셨는데 처음 만난 ‘여자’가 마치 아버지처럼 법문을 들려주시길래 ‘우리 아버지가 환생 해 다시 오셨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조정인 교도(궁동교당)는 그렇게 서위진 교무와 원불교를 만났다.처음에는 무당집인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2.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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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10년 넘게 해오던 사업의 부도. 세상을 향한 원망과 증오가 마음에 가득 차오르니 잠도 오지 않고 밥 한 술도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이 다치고 나니 몸도 함께 피폐해졌다. 권오덕 교도(기흥교당)의 이야기다. 2000년 이전 중국에서 귀금속 사업을 했던 그는 사업실패를 겪으며 우울증을 앓게 됐다. “생계를 위해 물류센터에 다니면서 담배를 하루 두 갑 이상 피웠던 것 같아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죠.”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내던 그에게 어느날, 당시 살던 아파트 이웃으로 있던 이법황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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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아 기자
2023.12.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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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영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원불교를 만나고 ‘자부심’이 됐다. 영광군 백수읍, 소태산 대종사가 태어나 대각한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년은 고등학교 때 처음 ‘자부심’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 상담실에서 원불교 교무님을 처음 봤어요. 당시 노래도 잘하고 기품있던 교무님을 보니 동경이 생기더라고요.” 김영근 목동교당 교도회장은 당시 해룡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김정심 교무에게서 꿈과 서원을 배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 하지만 그에 비해 가정형편은 녹록지 않았다.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2.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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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초등학교의 어떤 교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종교에 해당되면 손을 들라”고 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성당’ 다니는 사람, ‘절’에 다니는 사람을 부르는 선생님 말에 친구들은 하나 둘 손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교당’은 불리지 않았다. “그때 원불교는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기타종교’였어요.” 사실 원불교는 항목에 아예 없었던 시절. 하지만 한 소녀는 꿋꿋하게 손을 들고 기다리며 원불교라는 항목을 가정조사란에 만들어냈다. “이제는 원불교 칸이 생겼을거예요”라며 환하게 웃는 김정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1.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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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위암입니다.” 아무런 전조증상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암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받아들였어요.‘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남편 유동길 교도(수원교당)는 경계를 담담하고 겸허하게 수긍했다. “더 좋은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공부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부인 강혜숙 교도도 자신들에게 찾아온 이 일을 ‘업’이라 여겼다. 부부는 ‘업은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임을 또 한번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두 사람은 그런 부부였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매일 아침 함께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1.1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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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그날은 천일기도가 끝난 날이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속도로 차가 달리는 고속도로 한복판. 사고는 눈 깜짝할 새 일어났다. 앞차가 갑자기 멈췄고 그의 차는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은 뒷차가 그대로 와서 쿵, 꼼짝없이 중간에 끼인 상태로 발생한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갑작스럽고 아찔한 사고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박성란 교도(서대전교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은님 감사합니다”였다. “큰 사고였는데 차에 있던 여섯 식구 모두가 다치지 않고 무사했어요.” ‘만약 뒷 차가 트럭이었으면 어쩔뻔 했나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1.06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