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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열반을 1년 앞두시고 그동안 진행되어 오던 「정전의 편찬 원고를 인쇄에 부치면서……나의 일생의 포부와 경륜이 그 大要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나니 삼가 받아 가져서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후세만대에 길이 전하게 하라하시고 누구나 신심 있고 공심 있는 사람이면 받아 갈 수 있게 하였다」(대종경 부
교화
심도정
1974.04.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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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성대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작은 데서부터 커지는 天理사무여한은 중생들 제도하려는 순일한 정신과 사 없는 마음일심합력은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전체로 통하는 마음김성철 원불교 창립정신은 원불교 반백년 역사에 흘러 온 맥박이며 개척정신이며 계속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확립해 가는 원불교 근본정신이다. 모든 문화의 창조적 가치는 신념과 성실, 근검과 절약, 단결과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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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월불교의 법이 어찌하여 천하의 대법인가? 하나도 버림이 없이 모두를 품안에 안아 들일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원불교의 도가 어찌하여 천하의 대도인가? 철천지원수지간이라도 은혜로 돌려 화합할 수 있게 하는 도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6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된 3월 대회에서 수위단원을 비롯한 교단의 원로, 중진들과 출가재가를 대표한 대의원 일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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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라교당(교무 양법관)에서는 3월 26일 오후 헌종식을 가졌다. 종의 무게는 20관.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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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교당 남자교도들은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박장식 법사의 지도로 특별훈련을 실시했다. 시간은 밤 8시부터 9시 30분까지.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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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대각개교절을 맞아 전주시내 4개 교당은 전주교당에서 합동법회를 가졌다. 전주지구 교역자와 지부장을 비롯 전주 양로원 노인들까지 참석, 4백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대산종법사는 (오치정 교동지부장 대독) 경축사를 통해 『뜻 깊은 이날을 맞이하여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받들어 다 같이 대성자를 받드는 대보은자가 되자』고 당부했다. 이어 조정근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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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 수도원이 3월 24일 기공되었다.5월 초에 준공하게 될 총부 수도원은 총 건평 27평으로 정년퇴직한 여자 원로들이 총부 가까이에서 수양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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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산선원 교감 청산 민도연 선생이 지난 3월 25일 노환으로 입적, 3월 27일 서울 자택에서 교회연합장으로 발인되었다. 향년 69세. 故민도연 선생은 1905년 충북 음성에서 출생, 원기40년에 전이창씨 연원으로 입교했다. 원기41년 3월 3일에 전무출신을 서원, 동산선원에서 1년간 입선한 후 수계농원 교무, 총부 예무, 용각 교무, 도장 교무, 전주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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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훈련원 개원식이 3월 31일 오전 9시 5백여 재가출가 교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총부 대각전에서 거행되었다. 대산종법사는 이날 치사(이병은 법감 대독)를 통해 『일원대도의 恩생수와 法생수가 끊임없이 샘솟도록 하는 임무와 사명이 막중하다』고 전제하면서 『대종사의 훈련법을 이어받아 훈련하는 교단, 공부하는 교단, 실천하는 교단, 개척하는 교단으로 이끌어야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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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교역자의 친목과 자체생활의 합리적인 규제를 목적으로 한 정화단 총회가 3월 31일에 있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단장에 이경순 법사(경남 교감)를 선출하고 실무위원으로 다음의 6명을 선출했다. ▷박은국 ▷송영봉 (이상 운영분야) ▷정진숙 ▷송원철 (이상 조직분야) ▷박제권 ▷이성신 (이상 재정분야)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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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중앙총부에서 열린 제19회 중앙교의회에서는 임기만료 된 의장단을 선거, 의장에 문동현씨(유임), 부의장에 박동현(유임), 김정용씨(신임 원불교신보사장)를 선출했다. 회의에서는 또 58년도 결산심의 59년도 예산안을 무수정 통과시키고 영산성지사업회도 발족시켰다. 대산종법사는 치사에서 『오늘의 세계 대세는 전 인류로 하여금 공동운명을 실증시키고 있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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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님께서 미래 인류사에 파란 많은 고해가 초래된 것을 간파하시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기치 아래 대회상을 펴신 지도 어언 반백년이라는 준령을 넘어서서 이젠 교단 회갑연대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개회되는 제19회 중앙교의회는 성년 교단으로서 교단내외의 막중한 요청과 기대에 부응해야 할 의의 깊고 중요한 회의입니다. 지난해는 교단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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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재소 중인 2백66명이 어두운 길, 괴로운 길을 헤매다가 3월 24일 즐거이 이 법문에 들었다. 목포교도소(소장 주병두)는 교정시책의 하나로 지난해 9월 28일부터 1인1종교 갖기 운동을 전개, 마침내 전 재소자를 종교인으로 만드는 데 성공, 3월 24일 원불교를 신앙하게 된 2백66명에 대해 득도식을 베풀게 된 것이다. 목포교당(교무 박순정)의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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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의 탄생, 대각, 개교의 유서 깊은 영산성지를 개발하기 위한 성지사업회가 3월 30일의 중앙교의회에서 재가출가를 망라, 거교적으로 출범했다. 4월 2일 회장 이공주 법사, 김윤중, 나철중 부회장, 박광전 법사(사업회 지도위원), 교정원, 이철행 부원장, 김인철 총무부장, 그리고 현지 서원생과 교도 대표 40여명은 영산성지 현장에서 사업회의 발족과 성공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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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총화와 전진을 다짐하는 새 출발의 거보이었다. 3월 26일 대각개교절 경축식과 3월 27일 정기수위단회로 시작된 원기59년도 3월 총회는 31일 종합시상식, 그리고 수덕회 총회를 끝으로 대단원을 내렸다. 수위단회에서는 교정 ㆍ 감찰 양 원장을 유임시키고 교정위원회에서는 전무출신후생사업회를 발족시켰다. 중앙교의회는 59년도 교정수행을
교화
원불교신문
1974.04.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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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유산 선생을 모시고 배산에 올라갔다. 이 근방에서 영주할 목적으로 주택지를 하나 마련해 볼까하고 갔다. 등산 후 좋은 곳이 있으면 택하여 달라고 했더니 유산 선생 말씀이 『우리 종사님께서 참으로 잘 아시는 분』이라고 찬양하셨다. 총부 처소는 양택지로 볼 때 「천하의 명지」라고 하시던 일이 생각난다. 1940년 9월경이라고 생각된다. 돌연 형오씨를
교화
황이천
1974.03.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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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옵는지요. 말로는 가히 형용할 수 없는 일원의 광채를 받으며 오늘도 군 생활에 임하고 있는 한 불제자가 인사드립니다. 종법사님, 그리고 여러 스승님들께서도 편안하시옵는지요. 역시 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중의 하나는 꼭 꿰뚫어 보겠다는 신념으로 덤벼보는 군 생활입니다만 정말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로서는 거의 황무지 상태인 군 사회를 법음으로
교화
원불교신문
1974.03.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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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린 아이 보고 손뼉 치는 술래잡기無明에 묶인 어른을 깨우치는 놀이었나곰곰이 생각에 잠겨 이 한밤을 새운다.등잔 밑 어둡단 말 예사로 넘겼더니불문에 들어와서 근본을 잊었고나여래원 信과 誠으로 흔적 없이 살으리라.둥근 임 만난 기쁨 눈물겹다 말을 말자청천의 태양 보다 밝고도 크신 자혜새 회상 영겁법자로 숨은 일꾼 되리라.<교무부 편수원>
교화
김학인
1974.03.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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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 열반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찍이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노라』하셨다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世尊이 臨涅槃하사 告大衆云 始從鹿野苑으로 終至跋提河히 於是二中間에 未曾說一字니라) 왜 세존께서는 49년간 설법했으면서도 한 말씀도 설한 바가 없다고 했을까? 세존이 설한 바는 모두 진리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교화
한정석
1974.03.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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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만대 길이길이 모범적인 원불교. 선친의 유훈이시다. 열반 몇 주일 전, 영광 신흥 향제에서 지필묵을 손수 챙겨 써 주셨다. 여기에는 선친의 평생 염원이 요약되어 있다. 1.「자손만대 신심불변」. 대종사님에게 하늘에 사무치는 신심을 바쳤고 역대 종통에게도 한결같은 신성으로 일관하셨던 선친은 간절하신 바람으로 가문을 이룩하라고 교훈을 내려주셨다. 불변하는
교화
이리 이도행씨 댁
1974.03.25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