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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열반이라 함은 우리 말로는 두렷하고 고요하다는 뜻인 바, 두렷하다 함은 우리의 자성이 원래 원만 구족하고 지공 무사한 자리임을 이름이요, 고요하다 함은 우리의 자성이 본래 요란하지 아니하고 번뇌가 공한 자리임을 이름이니, 사람이 이 자성의 도를 깨쳐서 자성의 원래를 회복함을 열반이라 하며, 그 자리를 단련하여 언제나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극락을 수용함을 일러 열반락을 얻었다 하나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열반의 참 낙을 얻어서 언제나 한결 같이 원적을 수용하는 이는 극히 적으므로 불가에서 형식상 사람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2.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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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정산종사 말씀하시었다.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함은 일이 없을 때(靜時)의 공부 방법으로 일심양성법(一心養成法)이요, 우리 심중에 모든 선악과 사량계교를 없애고 오직 일원상과 같은 원만청정한 마음을 기르자는 것이니, 일상(一相)은 일원상의 약칭으로 곧 일념미생전 자리이며, 삼매는 곧 정정(正定)을 말하는 것이라. 염불이나 좌선으로 우리의 마음을 온전하게 함은 일상이요, 공부가 순숙(純熟)하여 온전하려는 한 마음과 그 온전함 마음까지도 구망(俱亡)한 지경에 이르러서 오직 마음이 여여함을 이룰 때를 일러 일상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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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정산종사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성품이 고요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나 움직인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한 것이니 성품의 본체 자리를 그대로 체받아서 행할 때에는 선으로 나타나야 하므로 계선설(繼善說)이라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 제1편 법문과일화 3.일원의진리 90)우리는 보통 성품을 심지(心地), 즉 마음 밭으로 이해하여 우리가 악을 심으면 악이 나오고 선을 심으면 선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만 '성품(體)이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2.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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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진공성(眞空性)은 상대가 끊어진 절대 자리로서 일원의 진리 가운데 제일 공한 것이요, 묘유심(妙有心)은 적적한 가운데 영령함이 있는 것이며, 실체기(實體氣)는 사은이요, 인과리(因果理)는 순환하는 이치다. 이 네 가지를 사람 하나에 나누어 보면 성(性)은 일념미생전으로 꿈도 없는 때요, 심(心)은 희로애락의 분별심은 없어도 분별낼 만한 요소가 있는 것으로 대중심이 있고 영령함이 있는 것이며, 기(氣)는 성과 심을 담아 있는 육체요, 이(理)는 행하는 것과 보는 것과 숨쉬는 것과 희로애락이 발하는 이치이다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2.0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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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학인이 정산종사께 여쭈었다. "음양이 상승하는 것과 같이 선악도 상승이 되어 반복하는 것입니까?" 정산종사 답하시기를 "제군의 말이 맞도다. 이 세상은 상생상극으로 조성이 되어 있나니, 이 상생상극의 이치는 풀잎에도 있고 짐승에게도 있고 사람에게도 있어서 상생의 인연으로 만난 물건은 서로 좋아하고 도와줄 것이나 상극의 인연으로 만난 물건은 서로 원수 같이 대하나니라. 우주로 말하더라도 죽은 물건이 아니요, 살아있는 물건이라 그러기에 심지어 똥 속에도 생생약동하는 기운이 있으므로 초목에 거름을 하면 잘되는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1.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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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공부는 근기따라 하는 것이다. 수상문정혜가 수상 즉, 일어난 마음의 모양을 따라 그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라면 자성문정혜는 경계를 따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상문정혜는 택법관공(擇法觀空)이 그 강령으로 법을 택하여 공을 관하는 것이며, 자성문정혜는 임운적지(任運寂知)가 그 요체로 적지(寂知), 즉 본래 자성에 갊아있는 공적영지에 마음의 운전을 맡기는 공부이다. 무시선법에서 마음의 고삐를 잡고 하는 공부가 전자의 공부라면 염두에 잊지 말고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가는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1.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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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주의 공부, 무상의 공부를 하는 것은 묘유를 쓰자는 것이다.- 제7편 불법대해10유는 유(有, 있음)라는 모양이 있고 그래서 우리가 자칫 거기에 머무를 수 있다. 무도 무(無, 없음)라는 상(相)이 있어 우리가 또한 그 관념의 상에 머무를 수 있다.대(大)라 함은 우주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有無)라 함은 만물의 생노병사를 이름이다. 대를 여의지 않은 소가 생멸하는 현상이 유무, 즉 유와 무다. 우리가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은 소, 그 자체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1.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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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이 마음을 사용할 때 어찌하여 원만구족하지 못하는가 하면 탐진치(貪瞋痴)가 들어 가리운 연고라, 사람에게 이 탐심이 가리고 보면 바르게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여 전(顚=전도몽상)을 하고, 또 진심 역시 그러하여 진심이 끓을 때에는 좋은 말도 바르게 들리지 않고, 자신의 말도 바르게 나오지 않으며, 치심 역시 그러하여 안으로 이 삼독의 불이 타는 까닭에 증애, 선악, 고락의 분별을 일으키나니, 그러나 안으로 이 삼독심이 잠들면 매매사사가 자연히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처리로 나타나게 되나
정산종사 법설
최봉은 원무
2018.11.01 14:09